예부터 불세출의 영웅에게는 그에 걸맞은 명마가 있었습니다. 역성혁명으로 새 왕조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도 백성들이 자신을 타고난 왕이라 믿도록 도와줄 '하늘의 뜻'이 조금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나라 목왕의 팔준(八駿)처럼 고대부터 황제들이 흔히 써왔던 방법, 즉 천하에 없을 것 같은 명마들이 등장합니다.
횡운골·유린청·추풍오·발전자·용등자·응상백·사자황·현표. 여덟 마리 모두 비범한 이름을 가진 팔준은 태조의 손자인 세종에 의해 당시 최고의 화원으로 일컬어지던 안견이 그림을 그리고 여러 학자들은 글로 칭송하라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제작된 그림과 글을 통해 '팔준'은 태조를 도왔던 건국의 공신이자 영웅으로서 생명을 갖게 됐습니다. 안견의 그림은 전하지 않지만 신하들이 올린 찬을 보면 여덟 마리의 말이 이성계를 도와 왜구를 무찌르거나 위화도에서 회군했다는 것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서도 태조가 가장 아꼈다는 말, 유린청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그림에 붙은 글과 신하들의 찬문으로 확인한 것은 유린청이 함흥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여덟 마리 중 무려 네 마리가 함흥산(유린청·발전자·용등자·현표)이었던 것을 보면 예부터 말 생산이 제주 한 곳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었으며 특히 전마(戰馬)로 사용됐을 것으로 생각되는 중형마의 산지가 한반도 북쪽에 있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해줍니다.
세종대에 그려진 팔준도의 소실로 숙종대에 다시 제작돼 지금까지 전해지는 팔준도첩에는 다른 말들과 달리 유독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유린청이 등장합니다. 눈빛이나 갈기가 사자와 같이 표현돼 있어서 그림만 보고도 서슬 시퍼런 위용이 느껴지는 유린청은 오랑캐나 왜구와의 전쟁에서 이성계가 가장 많이 탔으며 가슴과 목·엉덩이에 화살을 무려 세 발이나 맞고도 31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꼈는지 죽어서는 돌구유를 만들어 묻어줬다는 이성계의 애마 유린청. 만약 태조의 팔준이 실제로 존재했던 말들이라면 유린청은 알렉산더의 부케팔로스 그 이상의 존재였을 것입니다. 영웅의 곁을 지켰던 또 다른 영웅, 말의 충성스러움은 '견마지성(犬馬之誠)'이라는 말로 변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김정희(말박물관 학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