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무엇이든 잃고 난 후에야 그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미리 대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된다.
잃었을 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시대에 따라 다를 텐데, 전쟁이 많던 시기에는 무기였을 것이고 산업 사회에서는 기계였을 것이다. 현대 지식 정보 사회에서는 정보, 구체적으로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이라고 할 수 있다.
몇 해 전 일어났던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설비 투자에만 신경을 쓰고 이후 유지보수에는 소홀히 한 데 원인이 있었다. 결국 사고가 나 유지보수 비용보다 더 큰 손해를 보게 되었는데, 같은 현상이 정보기술(IT) 분야에서도 일어났다.
99년 이른바 'CIH 바이러스 대란'이 그것이다. 안타까운 과거를 되짚는 것은 더 큰 규모의 사고가 재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산업 혁명 이후 가장 획기적인 변혁인 정보화 혁명을 이끌었다. 초기 중대형 컴퓨터의 시기를 지나 PC가 대중에 보급되자 컴퓨터는 TV나 냉장고처럼 일반 가전제품의 하나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PC의 성능은 점차 강력해지고 인터넷에 직접 연결됨에 따라 중요 정보가 PC에 저장되고 전자상거래, 온라인 뱅킹, 사이버 주식거래 등 중요한 경제 활동이 인터넷에 연결된 PC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편 90년대 중반 이후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온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로서 이름 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바다'에서 건져 올린 정보가 큰 자산 또는 무기가 되고 있다. 인터넷은 또한 정보와 지식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개방과 공유의 장으로서 미덕을 발휘한다.
그러나 반대급부로 바이러스나 웜, 트로이목마의 좋은 전파 경로로도 악용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 메일을 통해 자동 확산되는 악성 프로그램들은 사용자의 선택과 무관하게 메일함에 자리잡고 있기 일쑤이다.
이것은 누구나 바이러스 유포자로서 명예와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데이터 손실 등 눈에 보이는 피해보다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이메일을 통해 전파되는 바이러스의 효시는 99년 3월에 발견된 멜리사 바이러스다. 뒤이어 2000년 러브레터 바이러스, 2001년 님다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획기적인 진화를 거듭해왔다.
이것들은 쓴 약에 입힌 당의정처럼 메일 제목이나 내용, 첨부 파일의 이름에 유인 요소를 갖고 있다. I love you(너를 사랑해), NakedWife(벌거벗은 아내) 같은 선정적인 단어나 안나 쿠르니코바 같은 유명인의 사진을 가장해 사용자를 유혹한다.
최근에는 ICQ, MSN 메신저, 다음 메신저 등 인스턴트 메신저 사용자의 증가와 함께 이를 기반으로 확산되는 악성 프로그램도 종종 등장하고 있다.
메신저용 악성 프로그램은 2001년 4월에 등장한 웜 퍼니파일스(FunnyFiles)가 처음이다. 이 웜은 "I have a file for u. its real funny"(당신을 위한 파일이 있다. 정말 재미있다.)란 메시지와 함께 HELLO.EXE 파일을 MSN 메신저로 보내 불필요한 스팸 메시지가 유통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악성 프로그램은 점점 지능화해 바이러스와 웜, 트로이목마가 통합된 형태도 다수 등장했다. 코드레드II는 해킹과 트로이목마가, 님다는 웜과 바이러스가 결합된 것이다.
특히 님다는 클라이언트와 서버를 모두 감염시켜, 다양한 플랫폼을 자유자재로 공격할 수 있는 악성 프로그램의 잇단 등장을 예고했다.
더욱이 인터넷과 네트워크가 '모바일'이라는 날개를 달기에 이르자 악성 프로그램이 활약할 수 있는 공간도 더 많아졌다. 벌써 개인정보기기(PDA)용 트로이목마가 몇 종 나와 있고 휴대폰용 악성 코드가 나오는 것도 시간 문제다.
그리고 지금은 사이버 아파트가 ADSL(초고속 인터넷 전용회선)이 깔려 있는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모든 가전 제품이 컴퓨터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냉장고에 바이러스가 침투해 냉장고 온도를 올려버리거나 전기밥솥에 침투해 밥을 태우는 바이러스도 생길 것이다.
컴퓨터 기반의 네트워킹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류의 새 패러다임이다. 사람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인프라가 발달할수록 역기능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악성 프로그램으로 인한 정보 손실 역시 마찬가지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역기능, 특히 정보보안 문제는 이제 일상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 사실이 상식으로 자리잡아야 할 때다.
/안철수(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