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광복절과 오페라

고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감옥 안에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의 유명한 여성 이중창이 흘러 나온다.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죄수들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이 아름다운 클래식 한 곡이 그들의 발걸음과 일과를 잠시나마 멈추게 하고 자유로운 삶의 의미를 기억하게 한다.영화 ‘쇼생크의 탈출’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그 장면에서 이들의 자유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ㆍ갈망을 음악만큼 잘 표현할 만한 도구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오페라 ‘안중근’이 공연됐다.이 오페라에서 안중근의사가 마지막 유서를 쓰는 장면에서 부르는 아리아 “내가 죽거든…”이 울려퍼질 때 참석했던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많은 관객이 뜨거운 눈물로 세종문화회관을 적셨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젊은 피와 짧은 인생을 모두 바친 이 훌륭한 열사들과 독립운동가들의 조국 광복에 대한 끓어오르는 소망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가장 강력히 관객에게 전달해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음악이며 그중에서도 조명과 무대ㆍ몸짓이 한데 어우러지는 오페라인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의 참상과 인권의 중요성을 다룬 뮤지컬 ‘요덕 스토리’가 바다 건너 미국에서 공연돼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음악은 인간의 감정과 철학을 담아내는 것 외에 자유에 대한 강한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향한 투쟁의 가장 큰 방편으로도 큰 힘을 발휘해왔다. 일제시대 때 조선 민족의 정신과 행동을 모으고 끝까지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게 한 것도 다름 아닌 어린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 동요에서 독립군가에 이르는 다양한 노래였던 것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오늘날 인류가 보편적 가치의 최우선으로 꼽는 자유와 인권, 삶의 존엄성을 가장 강력한 감동으로 이끌 경험들이 많다. 36년간의 이민족 압제가 그렇고 그 이전의 수많은 외세의 침략은 물론 바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분단과 이산가족의 한이 그러하다. 그리고 좁은 땅덩어리 가운데 그어진 선 너머에서 같은 민족의 절반이 지구상에서 가장 참혹하게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현실이 바로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인가를 정확하게 가르칠 수 있는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광복을 맞이한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들이 우리에게는 많이 남아있다. 미국인들과 우리 동포들의 노력으로 겨우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는 정신대 문제만 해도 그렇다. 현대 인류사회에서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가치 중의 하나가 이토록 처참하게 짓밟혀진 사건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광복이 된 지 수십년이 지나고 이제야 우리의 우방국 일부에서 “이런 일이 있었고 사과를 하는 것이 좋다”는 정도의 진전만 이뤘다. 반면 유태인들은 전세계를 뒤흔드는 문화의 힘으로 온세상에 이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끊임없이 심어주고 있다. 지구촌에 사는 교양인이라면 누구든지 영화 쉰들러리스트 같은 나치 독일의 유태인 대학살에 관한 영화나 음악ㆍ공연 한편 쯤은 감상하며 살아가는 것을 피할 길이 없을 정도다. 오늘날 세상을 불행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분쟁은 그 원인도 다양하다.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쟁이 극복되는가 싶더니 종교에 의한 분쟁과 민족 간의 갈등, 영토에 대한 갈등은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 여전히 인간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문화의 세기라는 21세기에 또 한번의 광복절을 맞이하는 우리가 오랜 역사의 고통과 영광 속에서 깨우친 자유와 인권의 참된 가치를 오페라나 음악작품으로 승화시켜 국부를 높이고 문화 입국의 실리를 취하는 한편 세계 인류에게도 크게 공헌하는 것을 새로운 시대적 사명으로 삼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또한 그것은 독립된 우리 조국이 부강한 나라보다는 한없는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이기를 바랐던 우리나라 광복의 선구자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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