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3류 규제에 멍드는 휴대폰 강국] <중> 경쟁력 갉아먹는 법안 남발

제조사에 매출 3% 과징금 폭탄… IT산업 생태계까지 위협<br>세계서 유례 없는 장려금 규제에 관련 종사자 설 자리 잃을 수도<br>환부만 도려내는 정밀 처방 필요


정부가 추진하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을 놓고 말들이 무성하다. 박근혜 정부가 내걸고 있는 규제완화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 규제공화국으로 회귀하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창조경제는 현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으로 각종 규제를 혁파해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려는 게 목표다. 하지만 정부가 올해 입법화를 목표로 밀어붙이는 이 법이 세계 일류 제품을 만들어내는 단말기 제조업체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이 법안은 소비자에 대한 차별적 보조금 지급 문제를 해소하고 단말기 유통 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분이 있다. 문제는 제조사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포함하고 있어 자칫 국내 시장을 옥죄는 독(毒)이 될 수도 있다는 염려다. 무엇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단말기 제조사를 규제하려고 하는 것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사후 규제 기능과 중복되는 이중규제일 뿐만 아니라 규제 완화라는 글로벌 추세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김성철 고려대 교수는 "단말기 제조사가 이동통신사업자에 판매 장려금을 지급하지만 이는 정당한 마케팅 채널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며 "만약 단말기 제조사의 불공정 행위가 있어 경쟁을 저해하고 소비자의 피해가 발생한다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사후 규제로 대응하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단말기 제조사들이 단말기유통법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법안은 단말기 제조사에 대한 불공정행위 규제와 자료 제출, 사실 조사, 시정 명령, 과징금 등의 규제를 담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과잉 입법이라는 것. 우리와 유사한 이동통신 생태계를 갖춘 일본의 경우도 2007년 보조금 규제에 나섰다 휴대폰 시장이 5,000만대에서 3,000만대 수준으로 급격히 쪼그라들고 국내 휴대폰 공급물량이 40% 급감하는 쓴맛을 봤다. 무엇보다 제조사의 불법행위 적발시 매출 3%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징수하려는 조항은 국내 단말기 제조사가 사실상 국내 시장 활성화에 나서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퇴행적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단말기 판매량과 출고가, 매출액, 지원금, 장려금 규모 등 단말기 유통과 관련된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은 역차별적 규제라는 차원에서 더 큰 논란 대상이다. 애플 등 해외 업체의 경우 국내법 규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내 단말기 제조사들의 발에만 족쇄를 채우고 애플은 아무런 제한 없이 뛰게 만드는 꼴이라는 게 제조업체들의 하소연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한 관계자는 "핀란드 외에는 우리나라처럼 단말기 보조금을 규제하는 사례가 없다"며 "생살은 건드리지 않고 불법 보조금과 관련한 환부만 도려내는 정밀한 규제설계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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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실을 무시한 법안을 또 만드는 것이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가장 걱정한다. 규제 리스크는 국내 시장을 망가뜨리고 결국 세계 시장에서 국내 단말기 제조업체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국내 단말기 제조사에 원가정보 등 핵심 자료를 공개하라는 것은 무장 해제와 다름없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증가세를 보이며 3,000만대 이상을 유지하던 국내 휴대폰 시장이 올해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서 2,000만대 규모로 축소될 가능성이 높은 게 단적인 예다.

이통사를 넘어 제조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국내 휴대폰 산업의 생태계도 크게 위협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1ㆍ2차 협력업체만 1,500개사에 이르고 이곳에서 일하는 인력도 20만명에 달한다. 여기에 애플리케이션 개발사의 경우 5,700개사가 넘는다. 국내 휴대폰 유통대리점도 3만개로 여기서 종사하는 사람은 18만명이다. 국내 휴대폰 산업이 흔들리면 이들 모두가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아이콘인 창조경제는 정보기술(IT) 산업을 근간으로 출발한다. IT 산업의 중심에는 수출 한국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휴대폰 산업이 자리하고 있다. 휴대폰 산업의 국내 기반이 흔들리면 창조경제 성과 달성은 요원해질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 경쟁력 쇠퇴를 야기할 수 있다.

김태진 한국IDC 책임연구원은 "휴대폰 관련 산업은 여기서 먹고 사는 인력이 40만명이 넘을 만큼 대규모 일자리 창출 산업이고 부가가치도 높다"며 "현 정부가 내걸고 있는 창조경제에 디딤돌이 될 휴대폰 산업에 대한 규제가 약보다 독이 되지 않도록 논란이 되는 법안 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단말기 제조사들은 단말기유통법이 기존 공정거래위원회 규제와 중복되는 점도 심각한 문제지만 방송통신위원회가 별도로 추진하는 방송통신이용자보호법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방송통신이용자보호법은 단말기 제조사들의 장려금 지급을 제한하는 게 주 내용이다. 방송위ㆍ미래부ㆍ공정위 등이 각각의 법으로 규제에 나서면 가뜩이나 치열한 글로벌 경쟁으로 버거운 단말 제조사들 입장에서는 세 명의 시어머니 등쌀에 허리가 휘는 삼중고에 시달리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아무리 몸에 좋은 보약도 과하면 독이 되듯 이들 법안이 좋은 취지라 할지라도 부작용이 큰 만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단말기 보조금과 장려금은 점점 단축되고 있는 이동통신 단말기의 수명 주기와 우리나라 소비자의 성향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측면도 갖고 있다. 때문에 일부 소비자단체와 소비자들은 오히려 보조금과 장려금 지급을 원하는 만큼 법안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휴대폰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 후생의 관점에서 단말기 보조금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면 불필요한 규제를 도입하기보다는 기존의 통신요금 규제를 철폐해 시장에서 직접적인 요금 경쟁이 이뤄지도록 유도하면 된다"며 "장기적으로는 통신 회선과 단말기 유통을 분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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