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데스크칼럼] 마당발과 연봉제

- 柳晳基(정경부장)「마당발」은 사전적인 뜻과 통용되는 의미가 다소 다른 표현이다. 국어사전에 「마당발」은 「볼이 넓고 바닥이 평평한 발-(용례) 마당발은 오래 걷지 못한다」고 풀이돼 있다. 반면 속어로서 「마당발」은 교제의 폭이 넓고 처세술이 뛰어나 이곳저곳 잘 뛰어다니는 사람을 비꼬는 투로 쓴다. 정부수립 이후 지난 반세기동안 우리 사회에서 잦은 풍파를 헤쳐 승승장구하거나 유독 오래 부귀를 누리는 사람들은 저마다 한자락씩 「마당발」 솜씨를 갖고 있었다. 「앞뒤가 꽉 막힌 외곬」라는 평가가 마당발의 반대 의미로 통하는 까닭도 바로 이런 사회풍토 때문이었다. 마당발 인사들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미덕으로 여겨온 숱한 장점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선후배, 상사·부하, 친인척의 길흉사에 빠짐없이 모습을 나타내고 조찬·오찬·만찬을 불문하고 각종 교우를 돈독히 한다. 마당발들의 구호는 「좋은 게 좋다」로 압축된다. 선악·호불호의 가치판단은 일단 배제한 채 언제 어디서든 넉넉함을 과시하곤 한다. 이들은 모르는 것이 거의 없는 반면 제대로 아는 것도 없다는 평을 듣는다. 또 늘상 「상식」을 강조하지만 법률과 제도의 엄격한 적용을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모나지않아 평판이 좋고, 안 되는 것 없어 유능하며, 모르는 것 없어 뭐든 척척 감당하는 그들이니 인정받고 출세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정부주도의 압축성장을 해온 지난 수십년동안 정경유착과 과잉규제의 사슬이 강철같이 억세졌다는 비판을 듣는다. 이런 판이므로 민간기업 입장에선 지연 학연 혈연등 각종 줄로 무장한 마당발 인사가 필요한 존재였다. 이들은 법과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고 인허가의 장벽을 뛰어넘는가 하면 은행돈을 끌어대면서 독과점 보호막까지 쳐주는 무소불위의 능력을 과시해 왔다. 그러나 IMF체제 이후 이들 마당발인사에 대한 평가는 일거에 추락한 느낌이다. 정보화 개방화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골목대장 격인 국내 마당발의 실력이 툭 트인 세계무대에까지 통할 리가 없게 된 탓이다. 지난해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민간·공공분야 할 것없이 연봉제가 약방의 감초처럼 들먹여지고 있다. 연봉제가 포함되지 않은 구조조정·경영개혁은 숫제 얘기거리도 안될 정도다. 노동계는 연봉제가 허울만 그럴듯 하지 임금삭감과 인력감축의 수단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분명 일리있는 얘기로 수긍이 가는 점도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IMF구제금융의 나락에 떨어진 원인을 거슬러 보면 「생산성 정체」라는 문제와 부딪친다. 고비용저효율 구조의 결과로 빚어진 생산성 정체는 결국 우리 사회의 고용·임금체계와 맞닿아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연공서열과 하후상박이라는 「도매금」시스템에 익숙해 있었다. 입사 동기들은 결격사유가 없는 한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같이 승진·승급하도록 보장된 반면, 그 이후엔 너나없이 마당발 흉내를 내며 좌충우돌해야 살아남았다. 앞뒤 안 보고 자기 일만 열심히 한 「외곬」들은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구나』를 되뇌며 축출당했다. 이런 시스템이 생산성 향상에 발목을 잡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저해하면서 고비용 저효율 체제의 한 축을 형성했다. 이런 사정때문에 「구조조정=연봉제」의 등식이 만들어 진 것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연봉제 시행을 전격 발표한 것은 노동계의 반발에 쐐기를 박는 결단으로 평가된다. 구조개혁에 반드시 수반돼야 할 생산성 제고와 노동시장의 유연성 회복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한 셈이다. 연봉제는 조직구성원의 성과와 실적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전제돼야 한다. 다시말해 평가 내용과 그에 따른 급여조정 결과를 구성원 각자가 군말없이 수용할 수 있어야만 연봉제는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각자가 소속한 단위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진력하고 그 기여도를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이 평가를 내리는 체제야말로 연봉제가 지향하는 바다. 결국 연봉제가 제대로 되려면 모든 조직에서 인사 권한을 직속상관이 온전히 행사해야 한다. 직속상관의 평가보다 차상급자, 차차상급자와의 안면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면, 다시말해 연봉제에서조차 마당발이 다시 끼어들어 준동한다면 그 조직은 능률 제고는 고사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IMF체제의 경쟁원리는 적자 생존, 부적자 도태의 무한적용에 다름아니다. 연봉제는 인사제도의 투명성이 전제돼야 확고히 성립된다. 그러자면 앞으로는 누구도 안면·연줄에 연연하는 마당발을 닮을 필요가 없이,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대우받는 「외곬」들의 세상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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