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9월 17일] 새 문화재보호 정책 필요하다

지난 1995년 8월15일 조선총독부청사가 철거됐다. 문화재적 가치가 있고 치욕의 역사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지만 경복궁 내에 위치한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돼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으로 철거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일제의 잔재는 아직도 서울시 청사, 서울역사와 철로, 한국은행 본점 등 여러 곳에 있지만 문화재적 가치와 치욕의 역사 현장 보존이라는 명분하에 일단 보존되고 있다. 다만 문화재적 가치가 없는 국유재산과 문화재 가치가 있는 사유재산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는 별도로 논의돼야 하겠지만 문화재당국이 피해보상대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소유자의 임의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 현행법상 기준이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비록 소유자일지라도 관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불편하고 문화재 인근 토지 소유자는 소위 앙각(문화재 주변에서 건축 높이를 제한하는 각도)에 저촉돼 건축을 제한을 받기 때문에 재산상 손해가 막심하다. 건물 신축 시에 문화재당국의 결정은 막강하다. 문화재 발굴 명목으로 건축 자체가 몇 년씩 지연될 뿐만 아니라 이미 멸실된 문화재 위치에 건축하려면 문화재 복원이라는 조건으로 건축제한을 받게 된다. 동대문 디자인프라자 신축에서는 멸실된 성곽을 일부 복원하도록 조건을 달았고 타워호텔 리모델링에서는 멸실된 성곽 추정지에 건축을 금지했다.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서울 각지에 산재하던 한옥 5채를 1999년께 복원 건축해 남산 기슭에 집단으로 모아놓고 몇 년 후 문화재로 지정했다. 공원이면 족할 시설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인근 주민에게 건축제한 피해를 주고 있지만 보상책은 전혀 없다. 문화재로 지정할 줄은 알되 그로 인한 피해자를 구제할 줄 모르는 문화재당국의 실책은 현실적으로 문화재를 파괴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수년 전 국도극장ㆍ스카라극장ㆍ증권거래소 건물 소유자는 문화재로 지정되면 피해가 크다는 사실을 알고 문화재로 지정될 기미가 보이자 건물을 자진철거하고 그 자리에 수익성 좋은 상업시설을 신축했다. 이번 서울시청 태평관과 동일한 현상이 일어났지만 아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던 것은 문화재 지정에 따른 후속대책이 없으므로 사유재산 소유자와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태평관이 사유재산이라면 벌써 철거됐을 것이지만 국유재산이라 여론의 대상이 될 뿐이지 법적으로는 철거해도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는 것이 현행 문화재 정책의 현주소이다. 문화재 대상을 철거하고 수익형 건물을 신축하는 것은 국민의 문화재애호정신 결핍이 아니라 정부가 문화재를 보호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센티브제도(피해분 이상을 건축하도록 협상해 보상하는 제도), 용도용적 이전제도(피해분 이상을 다른 위치에 개발할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 등 예산 없이 가능한 정책이 있지만 추진하지 않고 있다. 인센티브제도가 있다면 서울시청 태평관을 보존하는 대신 앙각제한보다 높게 신청사를 건축하도록 협상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문화재당국은 오직 태평관 보존이라는 규제와 앙각 준수라는 의무만을 서울시에 강요하고 있다. 서울시도 운신을 못 할 정도인데 이와 유사한 피해를 본 국민들이 얼마나 많았겠나 미뤄 짐작할 수 있는 확실한 사례이다. 건물 소유자는 문화재 지정을 기피해 철거를 고심하고 인근 토지주는 앙각에 의한 피해가 예상되므로 문화재 지정 전에 철거하라고 권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는데 제3자들은 보존을 주장하지만 어느 누구도 당사자의 재산 피해를 보상해주자는 의견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문화재당국은 이점을 간과하고 오직 문화재 보존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항일시민단체가 일제잔존이라고 철거만 주장한다면 어쩔 것인가. 규제와 의무를 강요하는 문화재당국이 스스로 앞장서 피해보상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더 나아가 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 오히려 당사자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조속히 추진해야 할 때다.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이 문화재를 보존ㆍ보호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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