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3월 9일] 구제역, 그 이후…

"아내가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병원에도 다니고 있지만 이런 고통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걱정입니다.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나 텅 빈 우사를 보면 저 역시 허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린 자식들 앞에서 소리 내 울 수도 없고 가슴만 답답하고…." 한 달 전 마치 자식과도 같은 70여마리의 젖소를 앞마당에 묻은 이상덕씨(포천시 어룡리 거주) 부부는 심각한 구제역 후유증을 앓고 있다. 젖먹이 어린 소를 들여와 거의 10여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밥을 주고 씻겨주고 눈을 맞추며 정서적 교감을 쌓아왔던 이씨 부부는 구제역 살처분이라는 생지옥을 겪어야 했다. 그동안 키우던 젖소들은 구제역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인근에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은 축산농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만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치고 숨을 쉬기 힘듭니다. 도살장에서 나온 인부들이 어미 젖소든 어린 젖소든 가리지 않고 이마에 총을 쏘고 쇠꼬챙이로 머리를 쑤셔서 붉은 피가 마당을 흥건하게 적시던 그 악몽의 순간은…." 듣기에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구제역 살처분에 대한 증언이다. "처음에는 소들이 배가 고파서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인부들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에 충격을 받고 한 마리씩 쓰러지니까 나머지 소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달아나려 했습니다. 그 소들을 다시 한 마리씩 붙잡느라 새벽 5시가 넘어서야 70여마리의 소를 전부 땅에 묻을 수 있었어요." 살처분이 이뤄진 곳은 포천시 44곳, 연천 3곳, 가평 5곳 등이며 가축 수는 모두 6,000두에 이르고 이 가운데 젖소만 2,600두가 넘는다. 정부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대비해 축산업 선진화 계획을 내놓고 있다. 그 선진 축산화 계획에 이런 축산인의 마음을 달래고 생업을 보장해줄 수 있는 방도는 있는지 궁금하다. 더구나 살처분된 가축에 대한 보상을 해준다고는 하지만 젖소처럼 육우 판매가 아닌, 우유 생산으로 생업을 이어온 축산농가가 적어도 1년 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보상책을 마련했는지는 더욱 의문이다. 구제역으로 가축을 하루아침에 앞마당에 묻어야 했던 축산 농가의 시름을 달래고 살처분에 따른 토양의 2차적 수질오염을 막기 위한 정부의 세심하면서도 따뜻한 정책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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