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세금은 공평해야 한다

고소득 자영업자 탈세 심해 <br>소득 제대로 파악해 과세해야

룸살롱 가운데 ‘텐 프로’라고 불리는 업소들이 있다고 한다. 수준이 상위 10%에 드는 고급 주점이다. 접대하는 아가씨들이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미인이면서도 서비스 수준이 높다. 당연히 술값과 아가씨들의 봉사료는 보통 업소보다 비싸다. 명품에는 불황이 없다는 말은 유흥업소도 예외는 아닌 듯 텐 프로 살롱은 늘 문전성시다. 매출규모가 웬만한 중소기업과 맞먹는다는 이런 곳이 서울 강남에만 수십 개에 이른다는 게 고급 술꾼들의 이야기다. 대형 음식점ㆍ사우나ㆍ러브호텔 등도 돈 잘 버는 곳으로 꼽힌다. 대기 번호표를 받아야 할 만큼 손님들로 붐비는 식당과 골프연습장이 하나 둘이 아니다. 객실 회전율이 하루 7~8차례나 되는 러브호텔도 숱하다. 그러면 이들은 과연 번 만큼 세금을 내는 것일까. 제대로 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성실납세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의사ㆍ변호사 등 전문직들도 마찬가지다. 엊그제 국세청이 내놓은 고소득 자영업자 422명의 세무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예식업, 스포츠센터, 대형 사우나 등 기업형 자영업자들의 소득탈루율은 무려 74%나 됐다. 연평균 8억1,000만원의 순이익을 올렸으면서도 고작 2억1,000만원만 신고해 세금을 냈고 나머지 6억원에 대해서는 세금을 안낸 것이다. 유흥업소와 도매업 등 기타 자영업자들은 7억4,000만원 소득에 3억3,000만원, 의사 등 전문직 자영업자는 4억2,000만원 소득에 2억4,000만원만 신고했다. 사실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면 모두 짐작하는 일이니 놀랄 일도 아니다. 오히려 국세청이 2ㆍ3차 조사계획을 밝히는 등 뒤늦게 의욕을 보이고 있는 게 이상하게 여겨진다. 보통 사람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일을 그동안 정부만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탓이다. 탈세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어떤 사우나 업주는 2년간 27억원을 벌었으면서도 고작 1억2,000만원만 신고했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통해 이들에게서 추징한 세금은 1,094억원. 1인당 평균 2억6,000만원꼴이다. 소득을 감추고 탈세를 하고 싶어도 그럴 길이 아예 원천적으로 막혀 있어 꼬박꼬박 세금을 내야만 하는 월급쟁이들로서는 분통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서고금ㆍ빈부를 막론하고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솔직히 말해 어쩔 수 없이 내는 게 세금 아닌가. 그런 판에 나보다 훨씬 많이 버는 사람들은 요리조리 빠져나간다면 세금 내기가 더 싫어질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연초부터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증세문제가 5ㆍ31 지방선거 후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세금폭탄’을 거론하기도 한다. 선거도 끝났으니 정부 여당이 양극화 해소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증세를 밀어부치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폭탄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들의 세금부담이 어느 정도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재산세 등 보유세가 크게 오른다. 세금감면ㆍ면제 제도의 대대적 정비를 골자로 한 중장기조세개혁방안도 공론화를 기다리고 있다. 양극화 해소 재원 조달도 다양한 방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세금문제가 빠질 수 없다. 그러나 세금을 더 거두는 게 꼭 필요하다 해도 반드시 선행돼야 할 원칙이 있다. 바로 공평과세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세금부담이 늘어나면 조세저항이 일게 마련이다. 게다가 형평성마저 어긋나면 반발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세무조사는 공평과세의 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따라서 소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산낭비를 막는 것도 공평과세 못지않게 중요하다. 국민들의 혈세인 예산을 허투루 쓰면서 세금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은 이런저런 문제를 떠나 우선 염치없는 짓이다. 정부가 이런 노력을 먼저 기울이지 않으면 아예 세금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것이 낫다. 세금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는 선거 전이나 후에나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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