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면서 올 6월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이 처음으로 기업대출 잔액을 상회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총대출 잔액(평잔 기준)은 기업 부문이 288조8,000억원, 가계 부문은 290조5,000억원이었다.
외환위기 이전인 지난 96년 기업대출 잔액이 124조원으로 가계대출 잔액 51조원의 약 2.5배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은행 돈이 가계로 쏠리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계대출이 기업대출을 웃도는 현상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한 2001년을 계기로 가속화한 뒤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만 봐도 기업대출은 5조7,000억원 증가한 데 비해 가계대출은 무려 17조1,000억원이나 늘어 세 배나 됐다.
최근 5년 동안 늘어난 가계대출의 반 이상이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올 7월까지 주택담보대출로만 13조원의 은행 돈이 풀렸다. 아직도 도처에 만연한 부동산 기대심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물론 기업대출의 상대적인 부진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외환위기 이전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을 계속해오던 기업의 재무구조가 건전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조업만 해도 지난해 말 현금보유액이 66조원이나 됐을 정도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외국계 은행들이 소매금융을 선도하면서 너나할것없이 가계대출 경쟁에 치중한 결과 자금흐름이 생산적으로 흐르지 못하고 정부의 갖가지 개발계획에 편승, 부동산 거품만 야기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뒤늦게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하향 조정하고 투기지역의 2주택 보유자에 대한 대출을 막는 등 부산을 떨고 있으나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정부는 이제라도 가계대출이 과도하게 불어나는 것을 억제함으로써 생산적인 자금흐름이 이루어지도록 정책적인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에 거품을 불어넣는 식의 자금흐름이 지속될 경우 헤어나기 힘든 경제파국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