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리버풀이 이탈리아의 AC밀란을 맞아 극적으로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던 지난 2005년이 생각난다. 당시 스페인 언론에서는 리버풀을 '스패니시 리버풀'이라고 불렀다. 스페인 출신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감독인 라파엘 베니테스를 필두로 루이스 가르시아, 사비 알론소, 호세미,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등 주축 선수들이 죄다 스페인 출신이었다. 이후 알바로 아르벨로아, 알베르트 리에라까지 합류하면서 리버풀 내의 스페인 컬러는 더욱 짙어졌다.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는 수많은 스페인 선수들의 활약상은 2005년을 떠올리게 한다.
사실 10여년 전만 해도 스페인 축구 선수들이 해외에서 뛴다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기질상 해외에서 생활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는데다 축구의 경우 스페인 리그가 세계 최고였기 때문에 굳이 밖으로 나갈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경제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가운데 해외 팀들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자 대이동이 시작됐다. 특히 언어장벽과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운 날씨 탓에 영국은 선호 국가가 아니었고 EPL은 스페인 선수들의 축구 스타일과도 맞지 않는 것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스페인 선수들이 넘쳐난다. 어쩌면 EPL이 세계 최고의 리그로 불리게 된 것 중 하나도 많은 스페인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발휘하는 화려한 기술 때문은 아닐까. 첼시의 후안 마타와 오리올 로메우, 아스널의 산티 카소를라와 미켈 아르테타, 맨체스터 시티의 다비드 실바와 하비 가르시아 등 빅 클럽의 기술 좋은 테크니션들은 대부분 스페인 국가대표팀 소속 선수들이다. 스페인 청소년 대표팀을 거친 수소는 리버풀의 촉망 받는 미드필더이고 스완지 시티의 미겔 미추는 스페인 리그에서는 저평가됐지만 EPL로 오면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스페인 축구의 전력은 국가대표팀을 세 개로 꾸려 월드컵에 나간다면 1~3위를 싹쓸이할 정도로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국 리그를 지키는 우수한 자원들의 수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스페인 리그도 잉글랜드나 독일의 리그 운영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만 치우친 리그 운영 방식은 스페인 선수들의 이탈만 조장할 뿐이다. /페페 세레르(대교바르셀로나 축구학교 총감독ㆍ바르셀로나 유스팀 스카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