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글로벌화를 주도하던 뉴욕 금융시장이 유럽 시장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 미국 달러화가 유로화에 비해 5년째 약세를 지속하는 탓도 있지만, 뉴욕 증시의 규제와 상장 비용이 유럽보다 까탈스러워 글로벌 기업과 투자자들이 미국을 피해 유럽에서 상장하고 투자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3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유럽 지역의 기업공개(IPO) 수수료 수입이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뉴욕증시가 유럽증시를 누르고 세계금융시장의 심장이 된후 처음이다. 글로벌 증시가 미국의 지배권이 약해지는 가운데 본격적으로 다자 체제로 전환하는 양상이다. 유럽 증시는 오래전에 IPO 규모에서 미국을 크게 앞지른데 이어 최근에는 시가총액 면에서도 미국을 넘어섰다. 올들어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24개 증시의 IPO 수수료 수입은 총 11억달러를 기록, 미국의 14억달러에 근접했다. 유럽의 전체 IPO 규모가 378억달러에 이르면서 미국의 212억달러에 비해 무려 78%나 많고 또 이 추세가 지속될 것을 감안하면 올해 수수료 수입 순위가 역전할 것이 분명하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유럽의 IPO 규모가 더 큼에도 불구하고 수수료 수입이 적은 것은 현재 유럽 투자은행의 IPO 중개 수수료율이 3.2%로, 미국 6.7%의 절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유럽의 수수료 수입은 미국의 5분의1에 불과했다. 씨티그룹의 마이클 라벨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수수료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상장기업이 받는 혜택이 커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하지만 이런 상황이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시가총액으로는 4월초에 유럽증시는 15조7,200억 달러로 뉴욕증시의 15조6,400억 달러를 추월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증시를 포기하고 유럽증시에 선택하는 것은 우선 사베인스-옥슬리법 같은 미국의 까다로운 상장규정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엄격한 회계기준이 기업들을 밖으로 쫓아내는 셈인데 지난 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사베인스법의 적용을 대폭 완화한 것은 이런 사정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펀더멘털(기초여건) 차이도 두지역 증시 역전의 배경이 된다. 지난 1ㆍ4분기 유로권(유로화 사용국)의 평균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1%로, 같은 시기 미국의 1.3%를 크게 앞질렀다. 또 유로권은 올 한해 2.6% 이상의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국은 2.2%에서 허덕이고 있는 형편이다. 이것은 양 지역의 통화에도 영향을 미쳐 유로화는 지난 2002년말 달러화 가치를 앞지른 이래 줄곧 오름세를 타며 이제는 1.4배 수준까지 치솟았다. 오는 6월 상장을 추진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모펀드 칼라일이 암스테르담 증시를 택해 미국 기업마저도 유럽증시로 움직이는 추세다. UBS의 톰 폭스 미국증권시장 공동대표는 "성장하는 유럽 경제가 더 많은 자본을 끌어들이고 있다"며 "이는 글로벌 경제가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가 병립하는 상태로 변화하는 추세를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