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박영철 고려대 석좌교수
"세계경기 내년 1분기 바닥치고 V자형 회복할것" "한국은 조금 앞선 올 하반기부터 살아날것"中성장률 5% 미만땐 우리경제엔 큰 충격"모든 금기 깨졌고 정부가 하지 못할일 없어져"한은 기업어음 직접 매입 등 극약처방 나서야
대담=안의식 경제부장 miracle@sed.co.kr
정리=손철기자 runiron@sed.co.kr
“세계 경기는 오는 2010년 1ㆍ4분기에 바닥을 치고 V자형으로 회복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엇갈리기는 하지만 이보다 조금 앞선 2009년 4ㆍ4분기에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한국 경제학계의 어른이자 국제 금융에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박영철(70ㆍ사진) 고려대 국제학부 석좌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 올 한해 세계 경제와 국내 경기 상황을 이렇게 내다봤다. 박 교수는 경제위기가 제2의 대공황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경고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올해 중국의 성장률이 제발 5%만 됐으면 한다. 그 아래로 내려가면 우리 경제에 큰 문제”라며 올해 가장 큰 변수 중 하나로 중국을 들었다.
박 교수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 관련, “경제정책에서 모든 금기는 깨졌고 정부가 하지 못할 정책이 없어졌다”며 “위기에는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는 등 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정부가 미분양주택을 직간접으로 사주는 등 극약처방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 임금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고용대책”이라며 “불황기에 고통받는 계층을 위해 도울 수 있는 모든 정책을 동원해 사회를 단합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 경제가 위기의 한복판에 진입하는 듯합니다. 경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통계를 보면 미국ㆍ유럽ㆍ중국ㆍ일본 등의 불황이 심화되는 게 완연합니다. 그 여파로 한국 경제도 예상보다 불황이 심하고요. 무엇보다 문제는 대세를 이루는 비관적 전망 그 자체입니다. 조사를 해보면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이 90% 이상인데 과거에는 어려워도 낙관주의자가 20~30%는 됐거든요. 비관적 전망을 바꿀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이건 우리만 나와서는 소용이 없고 전세계가 같이 해야 합니다.
-경기회복 시기는 언제쯤으로 예상하십니까.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세계 경기가 2010년 1ㆍ4분기에 바닥을 치고 이후 V자형으로 급속히 올라갈 것으로 예측합니다. 경기회복은 인플레이션을 동반할 겁니다. 전세계의 어마어마한 빚을 인플레이션이 날려버리면서 회복이 되는 거죠. 돈을 엄청나게 찍어서 풀었으니 회수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겁니다. 미국ㆍ유럽이 2010년 1ㆍ4분기 바닥을 치면 한국은 그 전에 회복될지, 이후가 될지는 의견이 갈립니다. 2009년 4ㆍ4분기부터 회복할 것으로 보는가 하면 2010년 하반기 이후로 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경기회복을 기대하면서 선투자에 나서고 정부의 재정지출 효과가 나타나 올 하반기쯤 회복이 되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경기회복의 모멘텀은 무엇이 될까요.
▦미국 주택시장이 내년 6~7월 바닥을 칠 것으로 봅니다. 다른 분야의 침체도 있으니 이와 동시에 회복되기는 어렵고 시차를 좀 두겠죠. 둘째 2010년 초부터는 소비심리가 살아날 것으로 여겨집니다. 셋째는 달러의 향방인데 달러 약세가 상당히 진행되면 미국 수출이 늘텐데 이 시기를 2009년 말이나 2010년 초로 보는 겁니다.
-한국 경제의 회복시기가 갈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세계경제보다 먼저 회복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정부의 강력한 부양책에 기대를 거는 겁니다. 4대강 살리기 등 재정지출은 본래 1년은 지나야 효과가 나오는데 정부가 당장 착수하겠다고 하니 믿어보는 거예요. 또 세계 경기가 2010년 1ㆍ4분기가 바닥이라면 3~6개월 전부터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확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복합적 미래예측이 포함됐습니다. 반면 2010년 하반기 이후로 보는 건 대외의존도가 크니까 미국 경제가 회복돼 수출이 플러스로 옮겨져야 경기회복 징후가 나타난다는 견해입니다.
-과잉 유동성이 적잖은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는데요.
▦(과잉 유동성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불가피해요. 신용경색으로 통화 유통속도가 급격히 떨어졌으니 양적으로 통화를 늘려 보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통화 유통속도가 정상을 회복하면 통화량이 어마어마하게 늘겠죠. 제일 먼저 원자재값이 오를 것이고 유가도 다시 급등할 겁니다. 부동산ㆍ주식 등 자산가격도 오릅니다. 이런 것들이 촉발되면서 인플레이션이 오고 임금인상까지 물가상승과 겹치게 됩니다.
경기회복 전에 과잉 유동성이 위기를 부르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되는 걸 경계해야 합니다. 경기회복 후에 오면 인플레이션이 될텐데 2010년 말에는 인플레이션으로 전세계가 무척 고생할 겁니다.
-향후 부동산정책은 어떻게 펴야 할까요.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경기둔화가 심해지니까 강력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미국도 부동산시장 침체가 경제파탄으로 이어졌어요. 세제 완화할 것이 있으면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나서서 미분양주택을 사줘야 합니다. 극약처방을 준비하고 있어야지 두고만 봐서는 안 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고문이 이런 상태로 가면 세계가 대공황에 다시 빠진다고 경고했던데 그럴 경우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경제학자로서) 창피한 말이지만 해선 안 되는 정책이 없어졌어요. 금기라는 금기는 다 깨졌습니다.
-통화정책도 못할 것이 없게 됐나요.
▦이제는 전통적 패러다임에서 이 정책이 옳으냐 그르냐 평가할 수 없게 됐습니다. 이젠 금리정책이 무의미해져 금리를 내려도 효과가 없어요. 중앙은행이 직접 시장에 나가서 기업어음(CP)과 회사채를 사야 돈이 돌아요. 이런 직접 개입은 원래 금기인데 미국에서 깨지고 이후 경제정책의 ‘룰(rule)북’이 다 깨졌습니다. 세상이 변했는데 우리만 과거에 집착할 수 없잖아요.
-정부의 위기대응책을 평가하면 몇점이나 될까요.
▦지난 9월이나 10월부터 재정ㆍ금융면에서 더 강력한 경기활성화 대책이 나왔어야 합니다. 4대강 살리기 등 경기부양책이 이미 시작됐어야 하는데 실기한 측면이 있습니다. 정치적 이유 등 제약조건이 있었겠지만 경제가 나빠질 것을 예상했으면 대폭적인 금융완화와 부양책을 빨리 했어야 합니다. 감세는 별 효과가 없어요. 세금을 깎아줘도 국민이 불안하니까 그 돈을 저축으로 돌리거든요. 결국 정부가 직접 나서 지출을 해야 하고 재정확대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필요하다고 보시네요.
▦진작했어야 합니다. 대운하와 연관되니 문제가 되는데 정부가 ‘대운하는 안 하겠다’고 하니 믿어야죠. 운하와 관계없다면 해야 합니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는 계속 커지게 됐습니다.
▦재정적자가 나겠죠. 재정건전성이 매우 중요했지만 지금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 위기인데, 모든 나라가 재정지출을 늘리는데 우리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한국도 주요 경제대국인데 각국의 재정확대에 공조하면서 세계경제를 살려야 합니다.
-달러가치는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 달러가 엄청난 약세를 보여야 하는데 시장이 불안하니까 안전자산을 찾으면서 달러가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요. 달러가치가 내려오는 것은 시간 문제예요. 언제 내려올지만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만 달러를 많이 보유한 중국ㆍ일본의 중앙은행이 투매를 하면서까지 자산손실을 용인하지는 않을 겁니다. 대체자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울며 겨자 먹기라도 가지고 있겠죠. 달러가 약세여도 파국을 부를 만큼 급락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 원ㆍ달러 환율 적정치는 어느 정도 선으로 보시나요.
▦우선 환율변동폭이 최근 너무 크지만 정부가 잘못 개입하면 큰일납니다. 정부 개입이 단초가 돼 투기꾼들이 공격할 수도 있어요. 환율은 괴롭지만 시장에 맡겨야 합니다. 원ㆍ달러는 1,200원대가 적정한 것 같은데 유동성 위기가 가시면 1,100~1,200원에서 움직일 것으로 봅니다. 갑자기 원고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지금보다는 강세를 보이겠지요.
-한국 경제는 중국의 영향력이 큰데 중국 경제가 괜찮을까요.
▦중국이 내년에 5% 이상 성장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심지어 중국 성장률을 2~3%로 보는 전문가도 있어요. IMF가 5%대로 예상했던데 그래도 우리에게는 엄청난 부담입니다. 중국은 경기부양에 쓸 돈은 있지만 돈을 쓸 방법이 마땅치 않은 게 문제입니다. 또 중앙에서 지방으로 재원이 가서 실제 건설사업에 돈이 투입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사회주의고 대국이다 보니 움직이는 속도가 느리고 민첩성이 약합니다.
요즘 ‘중국아, 제발 5% 성장은 해라’라고 기도합니다. 5% 밑으로 떨어지면 중국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ㆍ사회적으로 큰 문제에 부딪칩니다. 중국 사회가 불안해져 민란이나 반란이 일면 우리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됩니다.
-세계적 경기침체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데요.
▦지난번 G20 회의에서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는데 결국 열리지 못했습니다. 자유무역에 나쁜 징조라고 봅니다. 더욱이 차기 미국 행정부는 자유무역에 의지가 강하지 않아요. 미국이 자유무역을 지지해도 세계적 확산에 리더십을 발휘할 능력도 도덕성도 없으니 자유무역의 위축은 불가피합니다. 다만 무역자유화가 많이 진전돼 후퇴를 해도 1920년대의 보호무역 수준이나 세계경제에 파국을 초래할 정도로까지 위축되지는 않을 겁니다.
-위기를 맞은 주력산업의 구조조정은 어떻게 추진해야겠습니까.
▦기업은 살려야 합니다. 우리는 제조업이 중요한 경제여서 가능한 살릴 기업은 살려야 합니다. 대기업 구조조정은 국책 금융기관을 통해 정부가 직접 하고 중견 및 중소기업은 개별 금융기관이 알아서 하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려면 은행이 구조조정을 해 증자를 하든 정부가 부실채권을 사주든지 해야 합니다.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고용유지도 기업을 살리는 데서 출발합니다. 고용대책은 다른 방법은 없고 임금을 내려야 합니다. 정부는 기업을 살리고 노조는 임금을 깎아야 합니다. 고용을 늘릴 방법이 ‘잡 셰어링’ 외에는 없어요.
-위기상황에서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말했듯이 우선 기업을 살리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불황에는 고통받는 계층이 많고 특히 서민이 그렇습니다. 정부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서민을 도울 모든 정책을 펴야 합니다. 저소득층은 세금을 안 내니 정보가 부족하지만 직접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저소득층은 소비를 많이 하니까 정부 지원이 소비진작으로 연결이 됩니다. 내가 진보여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사회안정 때문입니다. ‘보수가 정권 잡더니 X판됐다’고 진보 측에서 비판할 텐데 논리적ㆍ정책적으로 대비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끝으로 1997년 환란 때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하는 등 자발적으로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노력을 보였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각계각층의 상반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 박영철 석좌교수는
한국 경제학계 '거목'… 현상황에 통렬한 자기반성 눈길
한국 경제학계의 거목이자 고희를 앞에 둔 노(老)경제학자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앞에 통렬한 자기반성을 거듭했다. 위기의 책임을 탁구공 치듯 떠넘기는 정치인과 관료들과는 전혀 달랐다.
인터뷰에 앞서 박영철 교수는 "경제위기를 예측하지 못했고 위기가 이렇게 심화될지도 몰랐다"며 "뚜렷한 위기타개책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창피할 뿐"이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경제학자 10명이 모여도 (위기진단과 대응책에) 모두 다른 소리를 하는데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며 '창피해요'를 연발했다.
박 교수는 "(경제학자가) 정책수단을 더 많이 개발했어야 했는데 10년간의 경제안정 속에 새로운 정책수단 모색을 도외시했다"며 "제 약 창고에 재정정책밖에 없으니 참 미안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젊은 학자나 연구원과 토론하고 해외 석학도 자주 만나지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나 젊은 경제학자 얘기나 별로 다를 게 없더라"는 말도 했다.
그는 "금기시되던 경제정책이 버젓이 쓰이는 등 경제정책의 룰북이 다 깨졌다"며 "괴롭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과거에만 집착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정부 경제팀에 대한 평가를 요청한 대목에서도 "더 열심히 해달라고 하는 것 외에 더 무엇을 주문하겠느냐"며 정부를 비판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어마어마한' '엄청난' 등의 표현을 자주하며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중국의 불안한 경제를 설명할 때는 북측 동포에 대한 걱정도 빼놓지 않았다. 박 교수는 "우리가 이렇게 어려우니 북한은 오죽하겠느냐"며 "유일하게 원조해줄 중국도 어려우니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사를 떠나 경제적 측면에서 나라로서 기능을 하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 박영철 교수 프로필
◇약력 ▦1939년 대전 ▦서울고, 서울대 경제학과 ▦1968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경제학박사 ▦1976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1984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1986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1987년 청와대 경제수석 ▦1992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1997년 금융산업발전심의회 위원장 ▦1999년 외환은행 이사회 의장 ▦2001년 외교통상부 대외경제통상대사 ▦2004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2005년 서울대 국제통상ㆍ금융센터 소장 ▦현 고려대 국제학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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