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열정과 믿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아우르는 색깔이 레드(Red)입니다. 하지만 항상 기존의 것은 새로운 것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쇠퇴하고 소멸하기 마련이지요. 연극 ‘레드’는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의지를 강렬하게 표현합니다.” 지난 해 토니상 6개 부문을 수상한 최신 화제작 ‘레드(11월 6일까지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의 주인공인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 역을 맡은 배우 강신일(51ㆍ사진) 씨가 지난 한 달여간 연습 과정에서 얻은 작품에 대한 해석이다. 대학로 연습실 근처에서 만난 강 씨는 “작가의 철학이 난해한 소재가 많이 언급되지만 작품 자체는 통속적인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로스코는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그림에 대한 철학도 확고한데 자신의 신념에 위배되는 상업적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갈등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자신의 신념과 모순되는 현실에 놓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 만큼 로스코의 철학을 빌려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파헤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민 간 마크 로스코(1903∼1970)는 직사각형의 화면에 선명한 색채를 대비시킨 일련의 작품으로 절대와 순수를 추구한 추상표현주의의 대가다. 예술가를 연기하는 만큼 준비 과정에서 인물 파악은 필수였다. 강 씨는 대학 교수에게서 로스코의 작품 세계와 인물에 대한 강의를 듣는가 하면 기성 화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물감 섞는 법, 붓 드는 법 등 하나하나 꼼꼼하게 배우며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피카소를 비롯한 입체파 위주의 미술 사조가 로스코를 중심으로 한 추상표현주의의 등장으로 쇠퇴하고 추상표현주의도 팝아트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과정을 언급한 강 씨는 “로스코가 ‘우리는 아버지들을 몰아내야 한다. (그들을 존경하지만) 과감하게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던 대목이 대사 속에도 나오는데 결국 자연스러운 삶의 순환 과정 속에 세대간 이해와 화합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씨는 “배우들이 연기하기 힘든 캐릭터 중 하나가 바로 실존 인물인데 그 사람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7년 말 간암 초기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기도 했다. 당시 영화 ‘강철중: 공공의 적’의 촬영을 앞두고 있을 때여서 강우석 감독에게 더블 캐스팅을 제안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주변의 격려 덕에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고 예상보다 빨리 촬영장에 복귀했다는 그는 “수술을 계기로 내 인생이 달라진 게 있다면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더 많은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는 다짐”이라고 말했다. 강신일은 어떤 배우로 관객들에게 기억되고 싶을까. “그런 건 없어요. 그냥 배우 강신일이라고 하면 ‘배우로서 꽤 괜찮은 사람’ 정도로만 생각해 줬으면 해요. 저는 현재의 제 자리에서 연기자로서 최선을 다하며 살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