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 끼는 계절로 접어드는 요즘 나랏일 어느 하나 위태롭지 않은 것이 없다.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새만금 공사, 군수의 집단 폭행으로까지 비화된 부안 방사선 폐기물 처리장 건설, 이경해 씨 자살로 심각해져 가는 농산물 시장 개방 논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한 이라크 전투병 파병, 국가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는 북한 핵 문제, 태풍 매미의 피해복구와 냉해로 인한 흉작 등 산적한 현안들로 민심은 사나워지고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여리박빙의 위태로운 형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는 다양한 입장과 의견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갈등을 조화시켜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안정도가 좌우된다고 본다. 과연 우리사회는 시대 변화에 따라 명분과 실리, 보수와 진보, 수구와 개혁을 조화롭게 운용하는 능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걸까?
`바이칼, 한민족의 시원을 찾아서`라는 책에서 읽은 발렌친 카그다예프라는 브리야트 족의 샤먼 곧 무당이 저자와 나눈 대화의 한 부분을 옮겨본다.
-“당신 삶의 목표는 무엇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훌륭한, 혹은 좋은 샤먼이란 자신이 함께 살아가는 민족을 위해 뭔가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는 좋은 샤먼이 되고 싶고, 따라서 우리 민족이 정직하게 서로 도와가며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게 내 역할이다. 사랑을 나누고 고통을 분담하는 것은 모든 종교가 지녀야 할 미덕이다. 반면 모든 악과 문제는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 다른 사람과 자연과 사물을 착취하는 데서 발생한다. 나는 모든 사람이 서로 인내하고 이해하며, 무엇보다도 먼저 남을, 상대방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상대가 원하기 전에 그가 원하는 것을 먼저 베풀어주는 것이 사랑의 첩경이다.”
지난 수 천년 동안 수많은 현자와 성자들이 설파했던 조화와 사랑, 이것의 실천자로서 `무당`의 역할에 대한 그의 지혜로운 말이 가슴을 울린다. 바이칼 샤먼의 말이 `광대(廣大)` 곧 예술가의 예술정신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광대란 글자 뜻 그대로 `넓고 큰` 영혼으로 세계의 불화와 고통에 정면으로 마주서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온 몸으로 감싸 안고 표현하는 예술가가 아닐까? 문화 예술계마저 편파 인사 시비와 문예진흥원의 조직 개편 문제 등으로 단체간의 분란과 개인간의 분열상으로 가슴 아픈 갈등이 노출되어 가는 요즘 조화와 화합과 사랑과 상생의 광대 정신이 더욱 절실하게 그리워진다.
<김명곤(국립극장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