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약속 속에서 살아간다. 개인 간의 약속도 있고, 부동산 금융 거래 등에서 오가는 것처럼 개인과 집단 또는 기관 간의 약속도 있다. 서류로 작성되는 약속도 있고, 서류로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서류보다 훨씬 구속력이 있는 약속도 있다.
하루는 24시간, 1분은 60초와 같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삶과 생활의 질서를 지배하는 사회적 합의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한 근본적인 약속도 있다.
형식은 각기 다르지만 약속에는 기본적인 속성이 있다. 바로 '지킬 것을 전제로 하고, 또 지키는 것이 선(善)'이라는 점이다.
나폴레옹이 말하기를 "약속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약속은 반드시 책임을 동반하며 그만큼의 부담도 따르기 마련이다. 세상에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약속은 없다는 것의 역설이다.
나 같은 정치인들만큼 약속을 많이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그간 지역 주민들에게 했던 약속을 차분히 점검할 기회가 있었다. 부득이한 사정 변경이 있어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한 약속도 일부 있었지만, 상당 부분의 약속을 지켰거나 지키고 있는 과정이어서 퍽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러한 관점에서 야당이 정치 쟁점화하고 나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문제는 참으로 심각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정략을 떠나 한국과 미국 두 나라 간의 약속이다. 그것도 지금 폐기를 앞장서서 주장하는 인사들이 요직에 있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 노 전 대통령 자신이 소신을 갖고 추진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양국 간의 협의를 거쳐 발효 일자까지 확정됐음에도 불구하고 '폐기', '재재협상' 등으로 표현을 바꿔가면서 FTA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지금 야당의 행태는 '자신들이 한 약속을 파기할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그들에게 약속은 지켜야 할 선(善)이 아니라 득표 수단에 불과할 따름이다.
약속을 어기면 개인 간, 가족 간에도 신뢰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국가와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폐기나 재재협상을 거론하는 자체만으로도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나 신뢰도는 일정 부분 상처가 났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불필요한 정쟁은 접어야 한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을 것이다. 얻는 것을 극대화하고 잃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과의 약속, 국제사회에서의 약속을 지키는 틀 속에서 우리의 실리(實利)를 챙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