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가 25일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홍석현 주미대사를 불법 정치자금 살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로 하면서 1997년대선 당시 정치권과 재계, 언론의 유착 관계가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참여연대는 이학수 전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의 대화 내용을 불법 도청한 안기부의 이른바 X파일에 등장하는 이 부회장과 이회창 신한국당대선 후보 등 20여명을 고발대상 명단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검찰 수사 범위는 = 검찰이 고발 내용을 중심으로 수사한다면 일단 수사 범위는 삼성그룹의 불법 정치자금 살포 의혹과 안기부의 불법 도청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의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여부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를 불러 온 기아자동차 사태와 관련해 삼성그룹의 기아차 인수로비 의혹도 고발 내용에 포함돼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그룹의 불법 정치자금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 진영과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 진영 뿐 아니라 군소 후보군에도 살포됐다는 의혹을 받고있다.
기아차 인수 로비 의혹과 관련해 도청 자료에는 이 부회장이 홍 대사에게 1997년 당시 신임 경제부총리 지원 방안을 논의하면서 `3~5개 정도를 주라'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녹취록에는 또 여당 대선 후보가 "복안을 당당하게 밝혀 공론화시키면 당내 정책위에 검토시켜 가능한 한 도와주겠다"고 말했다는 대목도 있는 것으로 전해져 정치자금 이상의 무엇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증폭되고 있다.
◇착잡한 검찰 = 이번 고발 사건을 처리해야하는 검찰로서는 천 근, 만 근의 추를 매단 것처럼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불법 정치자금 살포 의혹은 정치자금법 공소시효(3년)를 훨씬 넘겨 준 쪽이나받은 쪽 모두 처벌하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를 이유로 참고인 조사를생략하고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기도 부담스럽고, 공소시효를 넘긴 사건 때문에전직 대통령과 여당 대선후보를 조사하는 것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공소시효 10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기아차 인수 로비 의혹을 밝히는 일도 쉽지 않다.
대가성 입증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특가법 뇌물죄를 적용하려면 이 부회장과 홍대사 등은 물론 그 당시 청와대, 정치권, 재정경제부, 금융기관 관련 인사들과 기아차를 인수한 현대차 등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 검찰 수사가 짐이 된다는 재계의 불만도 터져나올 수 있다는 점이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검찰이 단죄 의지를 밝힌 불법 도청은 정-언-재 유착 의혹에 비해 녹음 경위 등이 이미 언론을 통해 보도됐기 때문에 수사 전망은 그리 어둡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이 부분도 수사 과정에서 안기부의 막가파식의 불법 도청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일부 도청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면 그 파급력은 이번 사안 못지 않을 게 뻔해 수사 범위를 놓고 검찰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안기부가 `미림'이라는 특수팀을 활용해 불법 도청을 해왔다는 게 검찰 수사에서 사실로 확인될 경우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최고 권력층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지도 논란 거리가 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은 수사 전망을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다. 고발장을 정식으로 받아본 뒤 내부적으로 법률 검토를 거쳐 수사 여부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