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컬럼비아대의 마이클 헬러 교수가 내놓은 '소유의 역습, 그리드 락'은 사적 소유권이 지나치게 분화될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이를 테면 유산으로 근사한 집 한 채를 물려받은 여러 명의 형제가 있다고 하자. 형제들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그 집을 그냥 보유하자는 입장과 매각 또는 임대하자는 입장 등으로 나뉘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그 집은 텅 빈 채 먼지만 쌓여 가게 된다. 만약 서너 명의 형제가 아닌 100~200명의 사람이 관련됐다면 어떻게 될까.
또 다른 예는 어느 제약회사가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했지만 실제 제조과정에 얽혀 있는 특허권 침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어 결국 신약개발을 중지하고 만다. 저개발 국가들도 선진국들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지적 재산권에 포위돼 새로운 산업 발전이 봉쇄된다.
이처럼 한때 문명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사적 소유권이 수없이 많은 분화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새로운 혁신과 발전을 불가능하게 하는 '그리드 락'이라는 괴물로 태어나 자본주의체제를 역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그리드 락'이 사적 소유영역뿐 아니라 공적 영역에도 곰팡이처럼 번져가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당파적 이해득실에 막혀 표류하는 수많은 일과 정책들, 타협이 민주주의의 미덕이라는 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막상 자기 이익에 반하게 타협하면 야합이니, 꼼수니 비난하는 정치 문화와 행태들, 그리고 그 배후의 어둠에서 서성이는 포퓰리즘이 바로 '그리드 락'이라는 세균의 서식처다.
기관별ㆍ부서별로 분화와 분업을 거듭하면서 종과 횡으로 얽혀 복잡하기 그지없는 행정체제에도 '그리드 락'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수 기관과 관련된 정책ㆍ사업 또는 인허가 사항이 기관 또는 부서의 이해 관계 거미줄에 얽히게 되면 2년, 3년은 그냥 허송세월이다. 현 정부 초기 문제가 된 전봇대를 왜 그렇게 뽑기 어려웠는지는 행정체제 내부를 한번 들여다보기만 해도 충분하다.
이런 '그리드 락'의 틈바구니에서 스며 나오는 고통은 결국 개개 국민들의 몫이며 커다란 사회적 매몰비용을 생산한다.
'그리드 락'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는 깊은 고민이 필요한 다급한 과제다. 우리 사회 체제가 이미 분화와 분업의 한계 효용이 체감하는 선상에서 더 밑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 들려오기에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