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금융공학의 파산


무위험 차익거래. 돈을 굴리는 펀드라면 누구나 꿈꾸는 절대 경지다. 세계 금융중심지 월가의 펀드매니저들은 인간의 지력으로 모자라자 컴퓨터의 힘을 빌렸다. 월가로 온 수학자와 과학자는 영원히 풀지 못할 것 같은 금융계의 지상과제를 금방 해결하는 듯 보였다. 바로 퀀트다. 양(量)을 의미하는 퀀터테이티브(quantitative)의 약자인 퀀트는 수학모델을 이용해 시장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매매 타이밍을 결정해주는 컴퓨터프로그램 또는 그것을 이용한 펀드나 투자분석가를 통칭한다.


△노벨경제학자와 헤지펀드의 만남. 수학자와 과학자, 심지어 연준(Fed) 부의장도 합류했다. 그래서 그 몰락을 천재들의 파산이라고 했던가. LTCM의 이야기다. 창업자 존 메리웨더의 투자이론은 복잡하기 그지없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모든 채권은 장기적으로 균형점으로 수렴된다는 게 기본 원리. 균형점만 파악하면 차익거래로 절대 손해 볼 일 없다. 완벽한 듯한 이 펀드는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관련기사



△수학이 금융과 결합한 계기는 아폴로 계획이 종료되면서다.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수학자들은 1980년대 월가로 향했다. 과학이나 금융이 숫자 놀음이긴 마찬가지. 공학자들은 방대한 자료 분석을 통해 시장 분석과 예측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적어도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퀀트는 마법의 유리구슬처럼 비쳐졌다. 하지만 퀀트는 금융위기 때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투자은행이 하루아침에 망하는 블랙스완의 예측은 능력 밖의 일이었다.

△지난주 한 증권사가 프로그램 매매를 통해 파생상품을 가장 높은 가격에 사서 가장 싸게 파는 어처구니없는 주문 실수로 파산위기에 몰렸다. 직원의 주문 실수라고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지 못한 프로그램 설계의 오류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컴퓨터에 의존했건만 그 프로그램을 만든 주인공 역시 인간이다. 절대 수익과 무결점에 도전하려는 욕망부터 헛된 일인지 모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