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베이비 스텝(baby step)’의 신호탄인가.”
정책금리 조정을 소폭씩 연속적으로 인상하거나 인하하는 모양을 일컫는 ‘베이비 스텝’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와는 거리감이 있는 단어였다. 박승 한은 총재는 지난 2002년 5월 취임 2개월 만에 시장의 예상을 깨고 첫 금리인상을 단행했지만 이후 ‘현대 사태’라는 복병을 시작으로 경기가 급락하면서 자취가 없어졌다. 이후 금리를 올려야 할 때 올리지 못해 한은이 부동산 가격폭등과 소득 양극화를 초래했다는 비난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경직된 한은의 통화정책 기조가 바뀐 것은 올 7월부터. 박 총재는 단골처럼 사용했던 ‘경기회복 뒷받침’ 이라는 표현 대신에 “정부 부동산대책을 지켜본 뒤 금리인상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가까운 장래에 금리인상 가능성이 있음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인 10월 금리를 올린 데 이어 12월 또다시 추가 인상을 단행했다.
박 총재는 이날 내년 3월 말로 끝나는 임기가 금리조정의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박 총재는 “인기를 얻으려면 금리를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임기)문제는 전혀 변수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내년 지방선거 때문에 내년보다 이달을 택한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도 “금시초문”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내년 1월을 기점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바뀌면서 금리인상 중단이 예상되는데 이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미국과 한국은 땅도 다르고 공기도 다르다. 전혀 아니다”고 밝혔다.
선거ㆍ임기만료 등 경제 외적인 요인은 통화정책의 변수가 될 수 없으며 한국의 경기상황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 한국적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유지해나갈 의지를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