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태윤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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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매기기에 익숙한 미국과 영국의 언론은 가장 존경받는 기업 또는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을 매년 조사해서 발표한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2004년 GE를 그리고 2005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를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발표했다.
미국의 포춘 역시 비슷한 형태로 순위를 발표한다. 이와 같은 순위 매기기와는 별개로 존경받는 기업들이 뉴스로 다루어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 또는 기업의 위기상황을 소위 ‘윤리경영’으로 극복한 실제 사례도 있다.
지난 1982년 존슨앤존슨은 대표상품인 타이레놀에 정신질환자가 투여한 독극물로 소비자들이 사망해 큰 곤경에 처했다. 시카고 지역에 대한 제품회수를 권고한 정부당국의 지시를 이행하는데 그치지 않고, Johnson & Johnson은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면서 미국 전역의 제품을 회수하고 정보를 공개했다.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시장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더 큰 신뢰와 사랑도 함께 얻었다.
주주자본주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기업의 주인은 주주들이다. 경영진이나 펀드매니저나 관료 심지어 근로자나 일반 대중도 모두 이해관계자일 수는 있지만, 주식을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기업의 주인은 될 수 없다. 이런 시각에서라면 경영진이 경영성과를 통해 책임져야 할 사람은 주주들뿐이다.
그렇다면 주주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과 영국에서, 주주도 아닌 일반대중들의 신뢰와 존경을 얻기 위해 기업들이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심지어 기업들이 주주들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사회의 신뢰와 존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기업의 주인인 주주의 이해관계도 다른 이해당사자들의 협조 없이는 관철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진화된 사회일수록 역사적인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 이론도 서로간의 신뢰와 존경이 사라진 이해당사자 간에는 투쟁과 대결만이 남는다고 확인해 준다.
한번 만나고 헤어지는 일회적 관계에서 신뢰와 존경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단기적인 관점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이 회사 저 회사의 주식을 사고파는 초단기 투자자들에게 그 기업이 사회에서 어떤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는 지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지속적인 관계를 염두에 둔다면, 신뢰와 존경이 서로간의 협조를 낳는데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된다. 이러한 신뢰의 ‘경제학적 의미’를 확장하면, 기업을 통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얻고자 하는 주주의 입장에서 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도록 노력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하고 자신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신뢰와 존경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 주변에서 신뢰와 존경 받는 분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돈 관리가 깨끗한 분, 법을 준수하고 윤리규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분,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분, 더 나아 가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 사회에 봉사하시는 분들이다.
결국 사람을 기업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재무적인 투명성을 바탕으로 경영방식이 법과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는 가운데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기업”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자신이 얻은 이익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환원은 신뢰와 존경 받는 기업으로 더욱 나아가기 위해 기업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권력으로 강제할 것은 아니다. 강제에 의한 정치적인 자원배분은 사회적인 비효율성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법과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는 기업 활동을 통하여 돈을 벌고 일자리를 만드는 그 자체로도 이미 존경 받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사회에 바쳐 일하시는 테레사 수녀님과 같은 분들을 진정 존경한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님처럼 사회에 헌신하며 살지는 못해도,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며 자식을 돌보는 우리의 아버지들도 존경한다. 그리고 그러한 아버지들에게 왜 테레사 수녀님처럼 살지 못하냐고 누가 강요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