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5월 12일] 아버지의 가르침

“아버지는 ‘용돈 받아 부자 된 사람 없다’고 강조하셨다.”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 425호 법정. 연예기획사 대표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직 방송국 피디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피고인 A씨는 지난달 22일 결심공판의 최후진술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언급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평생 ‘청렴’을 강조하던 아버지는 이젠 내 안부를 묻지도 않는다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기 프로그램을 여럿 제작한 그는 순간의 욕심을 뿌리치지 못했고 결국 구치소에서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불운한 신세가 됐다. ‘부적절한 용돈’을 받아 구설에 오르는 이가 어디 A씨뿐일까. 최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는 ‘거액의 용돈’을 받은 유력 인사들을 줄줄이 검찰로 불러들였다.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이 줄소환됐고 형인 노건평씨는 ‘구속 피고인’ 신세가 됐다. 검찰은 박씨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들 몇 명을 더 기소할 방침이라고 하니 이쯤 되면 ‘안 받은 사람을 추려내는 게 더 빠르겠다’는 시민의 냉소가 빈말만은 아닌 듯하다. 부적절한 용돈에 욕심을 내다 오히려 정치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국민의 신뢰’와 ‘양심’이라는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셈이다. 법원에서 취재를 하다 보면 용돈은커녕 먹고 살기 위해 불법 포장마차를 하고 전봇대에 전단을 붙이다 단속에 걸려 법원 즉결심판에 넘겨진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이들은 생계를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그래서 단 돈 몇만원의 벌금 때문에 한숨을 쉰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은 (받은 돈이 전두환ㆍ노태우 두 사람에 비해 액수가 훨씬 적어) 생계형 비리”라고 변명하는 것은 구차한 궤변(?)에 불과하다.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과 부른 배를 더 채우겠다는 욕심으로 용돈을 받은 사람들은 다르다. 매일 새로운 내용ㆍ인물이 추가돼 여전히 신문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박연차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용돈 받아 부자 된 사람 없다’던 A씨 아버지의 가르침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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