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잘못된 출발/되짚어본 한보몰락사

◎“쇳가루로 흥한다” 점쟁이 말로 탄생/84년 금호산업 인수후 「황금알 철강」 망상에/숱한 의혹속 당진제철소 건립 파국불씨 남겨/“흙만지면 대성” 점술가 조언에 사업자 길 첫발/부정 염두에 둔 무리한 자금조달 “예견된 부도”지난 1월23일 하오 5시35분 한보철강 채권금융기관회의가 소집된 제일은행 본점 회의실. 『정태수 총회장이 경영권 포기를 거부함에 따라 한보철강을 최종 부도처리키로 결정했습니다.』 신광식 제일은행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한보철강 부도사실을 공표했다. 투자규모만 5조원대를 넘어서는 거함 한보철강이 마침내 침몰하는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원칙과 비리로 점철된 한보의 실체가 이후 하나 둘씩 드러나면서 한보철강의 부도는 한 재벌그룹의 몰락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질서와 정치구도를 뒤흔드는 초대형급 핵폭풍으로 자리매김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한보베일 벗기기」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역술과 깃털, 떡값 등 다양한 소재들이 가미되면서 당대 최고의 인기 드라마(?)로 부각되고 있는 한보부도 사태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그 주제는 무엇이고 클라이막스는 어떤 것일까. 10년여에 걸친 한보철강의 성장배경과 부도처리되기까지 막후에서 벌어졌던 거물급 연기자들의 역할을 중심으로 「한보몰락사」를 재구성해 본다. ■비운의 시작(한보철강의 탄생) 『쇳가루를 만지면 흥합니다.』 단군이래 최대의 금융사고로 불리는 한보부도 사건의 서막은 어이없게도 한 점술가의 예언으로부터 시작된다. 85년 가을쯤. 종로5가 보령약국 뒷편에 위치한 백운학철학원에 중절모를 눌러쓴 건장한 체구의 사나이가 찾아들었다. 『새 사업을 시작하려는데 가능성이 있습니까.』 사나이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백씨는 이에 『흥한다』는 말로 답했다. 두사람의 대화는 간단하게 종료됐고 중절모의 사나이는 타고 왔던 검은색 벤츠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중절모의 사나이는 다름아닌 한보철강의 정태수 총회장. 숱한 곡절을 겪으며 「자물쇠」 「오뚝이」 「불사신」으로까지 불리게 되는 정총회장이 과연 무슨 이유로 철학관을 찾았던 것일까. 비운의 기업 한보철강의 탄생비화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신규사업으로 철강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던 정총회장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점술가에게 진단을 부탁했고 긍정적인 답변에 만족했던 듯 싶다. 운명을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의 존재를 확신했던 정태수 총회장에게 백운학씨의 『흥한다』는 점괘는 곧바로 사업성공을 알리는 청신호나 다름없었다. 백씨는 최근 사실확인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회장의 사주에 그렇게 나와 있었으며 이를 그대로 전달해 주었을 뿐』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정총회장이 서울 북부세무서 주사를 끝으로 23년간의 세무공무원 생활을 마감하게 된 계기도 바로 역술가의 조언 때문이었다. 『사업으로 대성할 운이니 당장 공무원 그만 두고 흙(토)과 관련된 일을 하라』는 백씨의 조언에 힘입어 기업가로 변신한 정총회장은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성공가도를 달린다. 정총회장은 첫 사업으로 몰리브덴 광산을 개발해 사업기반을 다진데 이어 78년에는 당시 최대규모인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4천4백24세대를 분양,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흙과의 인연을 재확인했다. 한보그룹이 철강사업에 진출하게 되는 과정에서도 일반적인 논리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예측불허의 요인들이 군데 군데 발견된다. 일단 시작부터가 무계획했다. 한보가 철강업에 첫 발을 들여 놓은 것은 지난 84년 부산 사상구 구평동 해안가에 위치한 10만평 규모의 금호산업(철강업체)을 인수하면서부터. 당시 한보는 금호그룹으로부터 섬유, 철강 등 2개 업종중 하나를 골라서 인수할 수 있었으나 경기가 별로 좋지 않았던 철강쪽을 선택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남들이 전혀 생각치 못했던 의외의 선택이었던 탓이다. 한보측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금호산업을 인수한 이유는 단지 구평동 공장땅이 아파트 건설부지로 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철강사업보다는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지어 매각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한보가 금호산업을 인수하면서부터 바닥세를 면치 못하던 철강경기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건축경기 회복과 중국특 수등에 힘입어 국내외수요가 살아나면서 철강업은 단기간에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알짜배기 기업으로 급부상했다. 아파트건설 부지로 인수한 이 회사는 이후 한보철강(현재의 부산제강소)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보그룹의 주력기업으로 떠올랐고 2년후인 86년에는 정총회장에게 5천만불 수출탑을 안겨주는 영광을 선사한다. 정총회장은 이때부터 「철강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환상을 갖게 됐고 곧바로 제2차 철강사업 확장계획에 나선다. 『쇳가루를 만지면 흥한다』는 점술가의 조언이 한 몫을 거든 것도 바로 이 때다. 철강사업 확장계획은 곧바로 구체화됐다. 89년들어 아산만 76만평을 매립해 세계 5위 규모의 당진제철소를 건설한다는 야심찬 사업이 시작된다. 바로 비운의 프로젝트 「당진제철소」의 탄생이다. ■불안한 출발(부지매립 과정의 문제점 노출) 하지만 당진제철소는 출발과정에서부터 문제를 안고 시작됐다. 기초적인 자금조달 계획은 물론 부지매립 과정이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는 결국 8년후 닥쳐올 한보철강의 파국을 예고하는 전초로 작용한다. 한보가 매립면허를 받은 충남 당진군 송산면 고대리 앞바다는 당초 공유수면 매립 기본계획에 지정돼 있지 않은 땅이었다. 그러던 것이 한보측의 매립요청이 있은 직후인 89년 6월 경제장관회의를 거치면서 공유수면매립지로 전격 고시된다. 정부는 이미 80년대초 전국토에 대한 매립기본계획을 세우면서 당진제철소가 들어선 아산만 일대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대형선박이 드나드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점 등을 들어 매립지로 부적합하다는 결정을 내려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같은 결정이 한보의 매립요청 이후 느닷없이 변경된 것이다. 문제는 또다른 곳에서도 제기된다. 매립허가 과정에 일관성이 결여됐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당시 아산만에는 삼성종합건설이 전기 전자 제지공장 부지로 매립요청을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같은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한보측의 매립요청은 허가되고 삼성측 요청은 기각됐다. 당연히 특혜시비가 불거져 나왔다. 시비의 근거는 명확했다. 정부가 특별한 이유없이 한보측 요구를 받아준데 반해 똑같은 조건을 제시한 삼성측의 요구는 묵살해 버린 것이 그 단초다. 당시 동력자원부는 한보의 매립요청 지역이 한전의 가곡리 화력발전소 회처리장과 중복된다는 점을 들어 당연히 반대의견을 개진했어야 했음에도 「의견없음」이라는 이유로 공유수면매립지 추가지정을 가능케 했다. 한전은 이 과정에서 단지 한보측이 요청한 91만평중 발전소 건립부지로 14만9천평을 양보받는데 만족했으며 그나마 이땅도 95년들어 한보측에 고스란히 넘겨줌으로써 두고두고 외압설에 시달리는 고초를 겪게 된다. 또 해운항만청은 89년 2월 발표한 의견서에서 『평택항으로 편입 운용될 지역』이라며 반대의사를 밝혔다가 3월21일 이를 특별한 이유없이 취하했고, 충청남도 역시 삼성종합건설이 신청한 B지구에 대해서만 정당한 사유없이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결국 거의 같은 여건의 인접해역에 삼성과 한보가 부지매립을 신청했으나 삼성측 요청은 불허되고 한보의 요청에 대해서만 허락이 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제철소부지 매립허가를 둘러싼 특혜시비는 일과성 논란으로 끝나 버리고 한보는 그해 12월 정부로부터 아산만 76만8천평에 대한 정식 매립면허를 취득한다. 한보철강은 이처럼 출발 단계에서부터 의혹과 베일에 가려진 의문의 기업이었다. ■이미 예고된 부도(자금 조달의 허구성) 매립 초기단계에 한보측이 제시한 자금조달 계획도 원천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정태수 총회장은 91년 1월 가진 기자회견에서 『당진제철소에 소요되는 총사업비 1조1천7백86억원 가운데 4천5백90억원을 주택사업, 유상증자, 사채발행 등을 통해 자체조달할 계획』이라며 『주택사업으로 개포. 수서지구 3천세대, 가양. 등촌지구 4천세대 건립를 올해부터 시작하고 93년부터는 부산공장 이전에 따른 아파트 1만세대 건립을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총회장이 주자금원으로 밝힌 수서지구 3천여세대 아파트건립 계획은 주택조합에 대한 서울시의 택지 불법공급을 전제로 한 것으로 후일 「수서사건」이라는 대형 부조리로 불거져 나오면서 전면 백지화되고 만다. 정총회장은 이 사건으로 일생 세번의 구속중 첫번째 구속의 테이프를 끊는다. 또 가양. 등촌지구 역시 한보가 임직원 명의로 자연녹지 4만6천여평을 소유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법률상 한보에 대한 택지공급이 불가능한 지역으로 판명된다. 높은 곳(?)으로 부터의 불법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택지공급이 이루어질 수 없는 땅이었다. 결국 정총회장이 밝힌 4천5백90억원의 자체 자금조달 계획은 애초부터 부정과 불법을 염두에 둔 무리한 발상이었으며 현실화되기 어려운 계획이었다. 이에 대해 한보여신을 담당했던 서울은행의 한 임원은 『당시 한보그룹이 당진제철소 총사업비 1조1천7백억원 가운데 7천1백30억원을 금융기관에서 차입하고 나머지 4천6백억원을 자체조달하겠다는 내용의 1차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었다』며, 『그러나 자료분석 결과 소요자금중 90% 가량을 은행 빚으로 조달할 속셈이었던 것으로 판명돼 자금지원을 거절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임원은 특히 『당시 여건상 한보측의 자금요청을 쉽사리 거절할 수 없었던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서울은행이 라이프건설 부실 등으로 자금사정이 극도록 악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한보 자금지원에 불참할 핑계를 댈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사업은 99%가 운」이라는 정총회장의 평소 지론처럼 투자규모 5조원대에 달하는 한보철강 당진제철소의 신기루는 이렇게 무계획과 불법의 소지를 안고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한보철강 부도는 이미 시작단계에서부터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다.<이종석> □한보일지(89∼93년) 89.6 건설부,한보철강이 부산공장 이전부지로 신청한 아산만내 매립대상지가 포함된 공유수면매립 기본계획 고시 89.12 한보철강 건설부로부터 76만8천평에 대한 매립면허받아 매립공사 시작(95.3 준공인가 획득) 91.2 정태수 회장 수서사건 파문으로 구속 92.9 통상산업부 외화대출 적격업체 추천(수서사건이후 금융대출 첫 재개) 92.12 산업은행이 1천9백여만달러(1백50억원) 외화대출(이후 94년들어 제일 조흥 외환은행까지 가세하면서 외화대출규모가 13억달러까지 급증) 93.3 권노갑 의원 국감 질문 무마용으로 5천만원 수수(93.12 같은 명목으로 5천만원,96.3 5천만원,96.10 1억원 수수) 93.5 이철수 제일은행장 취임(96.2 유원건설 인수시 1천98억 지급보증,재임중 7억원 수수) 93.7 연매출 4백억원대 상아제약 인수 93.8 청와대지시로 사정당국이 한보그룹 내사 실시(민주계 로비설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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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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