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주식시장]<상>무너진 수급구조
매수주체 실종 '매물이 매물불러'
서울증시가 연일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며 '패닉'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미국증시의 불안이 지속되면서 그 여파가 고스란히 국내증시로 전이돼 수급구조가 깨진 데 따른 것이다.
외국인들은 미국증시 하락으로 펀드 환매압력을 받게 되자 이를 충당하기 위해 국내증시에서 순매도를 하고 있고 이로 인해 주가가 떨어지면 기관은 다시 손절매(로스 컷) 물량을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기관들의 매물은 대부분 시가총액 상위 우량종목이어서 종합주가지수 하락폭이 커지고 이 영향이 시장에 확대 재생산되면서 급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매물이 매물을 부르는 하락장세에서의 전형적인 악순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기관투자가들이 주가하락으로 인해 로스컷 물량을 본격적으로 쏟아낼 경우 시장기조가 더 취약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 매수주체 실종상태
증시의 수급구조 악화는 무엇보다 외국인투자가들이 순매도를 지속하고 있고 그동안 외국인 매도 충격의 완충역할을 하던 기관투자가들이 사실상 매수여력을 상실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외국인투자가들은 올들어 현재까지 이미 5조원을 넘는 주식을 순매도했다. 증시 개방이후 연간으로 첫 순매도이자 사상 최대 규모다.
그나마 외국인 매물을 소화해내던 기관투자가들도 9월 들어 순매도로 돌아서면서 증시 기반이 취약해졌다.
주가가 오름세를 보였던 직후인 지난 5월까지 기관투자가는 모두 2조7,665억원의 순매수를 보이며 외국인의 매도 충격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6월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종합주가지수 800선이 무너지면서 6월 들어 기관투자가는 9,558억원 순매도로 돌아서 7월에도 650억원을 순매도했다.
8월 들어 700선을 지지하기 위해 4,851억원어치를 사들였지만 시장기조가 붕괴돼 700선 붕괴 위기가 재현되자 9월 들어서만 1조원 가까운 주식을 내다팔았다.
전문가들은 투신권의 로스컷이 시작된 점이 기관매도를 부추기는 결과로 연결된 것으로 분석했다.
▶ 자금, 증시유입대신 이탈
증시불안은 자금이탈로 이어지며 기관들의 실탄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시중에 돈이 넘쳐나고 부동산 억제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증시하락세 지속으로 자금의 증시유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있는 탓이다.
투신권의 매수기반을 나타내는 주식형 수익증권 잔액은 5월23일 9조5,544억원으로 연중 최고수준을 기록한 이후 넉달째 떨어져 9월26일에는 9조3,392억원으로 감소했다.
이 기간 중 2,152억원이 감소했다. 비교적 위험성이 적은 주식혼합형 잔액 역시 6월12일 52조3,228억원을 정점으로 9월26일까지 무려 1조649억원이 이탈해 51조2,579억원까지 감소했다.
기관들의 매수여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점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고객예탁금 역시 연중 최저수준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4월11일 12조5,896억원까지 늘어났던 고객예탁금이 9월27일에는 8조2,622억원으로 불과 3개월여 만에 4조3,274억원 줄었다.
개인투자가 역시 매수여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해외증시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기관투자가의 추가 손절매와 외국인 매도흐름으로 인해 주식시장의 추가적인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증시가 연중 최저지수를 경신함으로써 새로운 지지선을 확인할 때까지는 추가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호진 미래에셋투신운용 주식운용팀장은 "기관 손절매는 상당 부분 이미 나왔기 때문에 추가적인 부담은 의외로 적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지수가 반등국면에 들어설 때 기관매물이 늘어날 수도 있어 장세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지난해 미국 테러사태 이전까지 종합주가지수가 박스권에서 움직임을 나타낼 때 강력한 저항선으로 작용했던 630선에서 지지선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조영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