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증권사 지점장의 하루(현장르포)

◎15년 「증권맨」생활 후회로 얼룩/객장엔 사자없고 들리는 말은 “깡통” 뿐/반대매매 강행땐 속으로 눈물삼키고/담보부족고객 “살려달라”에 한숨만/무거운 출근발길 퇴근땐 천근만근주가가 끝없이 떨어지면서 주식시장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있다. 특히 증권사직원들과 주식투자자들이 만나는 증권사 객장은 거액의 투자손실로 허탈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부 투자자들은 신용계좌의 담보부족으로 이에대한 반대매매를 둘러싸고 증권사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하락폭이 커질 수록 이같은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증시공황의 늪도 깊어지고 있다. 좌절과 회한이 뒤엉켜 있는 증권사객장의 모습을 담았다.<편집자주> 30일 아침 8시 S증권사 광화문지점. 15년째 「주식밥」을 먹은 김모(41·서울 서초동)지점장은 출근하는 발길이 무겁다. 요즘같은 장은 정말 처음이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이다. 어제밤에도 새벽 3시까지 CNN 뉴스를 봤다. 뉴욕증시 소식을 모르면 불안하다. 조간신문을 아무리 뒤져도 호재성 뉴스는 없다. 전날 강경식부총리가 내놓은 금융시장 안정책에는 그럴듯한 증시대책은 없다. 왠지 오늘 장이 불안하다. 8시20분 아침 회의를 소집했다. 김지점장은 혹시 출근하지 않는 직원은 없는지 챙긴다. 지금은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는 부하직원들의 말조차 두렵다. 사고가 생긴 것은 아닌지. 객장에서 고객을 맞는 김대리가 언성을 높인다. 『돈 안가져 오시면 어쩔 수 없다니까요. 사모님.』 오여사가 또 생떼를 부리는 것이다. 오여사는 1년전부터 주식을 했다. 개별종목으로 재미를 보더니 올들어 신용까지터서 제법 크게 주식을 했다. 그러다 최근 깡통을 맞았다. 남편 몰래하는 거라서 담보부족을 메꿀 방법이 없다고 살려달라고 난리다. 『증권주 화이팅. 증권주 올라라.』 20포인트이상 하락하던 주가가 일부 증권주로 매기가 몰리면서 회복되는 모습이다. 활달한 성격의 조차장이 더 오르라고 응원을 한다. 시황정보판에 『경제팀 문책만이 유일한 증시부양책』이라는 자막을 보고 김지점장은 씁쓸히 웃는다. 전화통과 씨름하며 정신없이 오전장을 마치고 점심도 먹는둥 마는둥했다. 김지점장은 투자상담사인 박고문, 조차장과 함께 갈비탕을 먹었다. 조차장이 은행에서 돈 1천만원 빌리려다 자존심 상한 예기를 했다. 은행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해서 대출부탁을 했더니 증권사 직원은 안된다는 것이다. 한때는 최고 엘리트 소리를 들었는데 은행에서도 문전박대다. 박고문은 지난해 명예퇴직하고 임시직 투자상담사로 재취업했다. 증권경력이 20년이 넘는다. 박고문은 산전수전 다겪은 백전노장인 셈이다. 그러나 최근 장세에는 박고문 마저 고개를 젓는다. 과거의 분석기법들이 모두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박고문의 전공은 기술적 분석이다. 주가 그래프를 보고 이격도니 투자심리도니 따지며 바닥이 6백선이다했는데 벌써 4백대로 내려앉았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아대니 주가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12시 30분 지점에 돌아와 석간신문을 펼쳤다. 좋은 뉴스는 없다. 혼라스런 정치권 뉴스일색이다. 정치권에서 경제를 우려한다고 하지만 말로만 떠들 뿐이다. 오후 1시. 후장이 시작됐다. 지수가 조금 오르는듯 하더니 다시 떨어진다. 신용 반대매물이 본격적으로 터지는 것이다. 전화통이 요란히 울리기 시작한다. 오후 2시 낙폭이 줄어들던 지수가 다시 하락한다. 어디를 봐도 해결 방법이 없다. 떨어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2시30분 25포인트 떨어졌다. 담보부족 계좌중 입금안된 것을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객장이 소란스러워진다. 고객들의 전화를 받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3시 마지막 입금상황을 확인하고 반대매매 주문을 낸다. 장이 끝났다. 오늘도 21포인트나 하락했다. 아침 예감대로 장은 또 망가졌다. 강남에서 지점장하는 대학동창 하나는 아예 비행기 티켓을 가지고 다닌다. 한 때 잘나가던 친구지만 개별종목을 하다가 수백억원을 물렸다. 집마저 부인명의로 넘겨 놓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장이 끝나면 이날 반대매매된 계좌를 처리하고 새롭게 담보부족 상태가 된 계좌 리스트를 뽑는다. 그럭저럭 5시다. 하루종일 전화를 받느라 귀가 얼얼하다. 객장에서 들리는 말은 온통 담보부족에 깡통이라는 말뿐이다. 김지점장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고객들의 계좌를 반대매매할 때는 가슴이 아프다. 방법이 있으면 어떻게 해주고 싶다. 그러나 방법이 없다. 회사측은 신용한도를 5개월로 못박았다. 3개월만 연장해 주면 급한 불은 끌수 있을 것 같은데.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다. 김지점장은 회사에서 인쇄해준 「지점장이 추구해야할 사항」이라는 전단을 본다. 『1.정직 2.수익성 향상 3.고객만족 4.직원 사기진작』 어느 것 하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 15년 증권맨 생활이 정말 후회스럽다고 생각하며 퇴근하는 발길이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정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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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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