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4일 중국과 일본에 대해 환율 시장 개입 중단을 요구한 것은 아시아 환율 문제를 재무장관 차원에서 정상 회담 차원으로 격상시킴과 동시에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구체적이고 강도높은 통상 보복을 가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관례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구체적인 나라를 적시하며 환율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따라 오는 16일로 예정된 부시 대통령의 도쿄 방문과 20~23일의 아ㆍ태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환율 문제가 주요 이슈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일부 미 하원과 상원 의원들이 제기하는 `환율 조작국`의 범주에 포함되고 있고, 원화가 일본 엔화에 대한 연동성이 높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의 언급이 환율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환율이 경제 성장력에 기초해 움직여야 한다면, 지금 일본의 경기 회복력이 한국보다 빠르기 때문에 지난 4년간 유지해온 `1엔=10원`의 등식에서 벗어나는 것도 용인될 것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중국이 위앤화 절상을 거부하고, 일본이 적절한 외환시장 개입을 지속하는 한 한국은행도 `보다 유연한` 시장 유도를 통해 엔화 절상폭과 위앤화 고정환율 사이에서 환율을 운영할 여지가 있다.
부시 대통령의 언급으로 지난달 20일 선진국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 이후 1달러당 105~110엔 변동폭 사이를 움직이던 엔화가 105원대 이하로 하락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다소 엔화 절상에 유연하게 대처하더라도 문제는 중국이다. 이번 정상 회담에서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고정환율제 포기에 합의할 것으로 보는 관측통들은 거의 없다. 중국이 위앤화를 절상할 경우 금융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미국 경제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벤 버낸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는 “중국의 변동환율제 채택이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으로선 내년 선거를 앞두고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시장 조작을 통해 미국의 일자리를 뺏기고 있다고 주장하는 제조업체와 유권자의 정치적 압력을 들어줘야 할 입장에 처해 있다. 민주당의 톰 대슐 상원 의원을 비롯, 상원의원 6명은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미국에서 잃은 수십만의 일자리가 외환시장을 조작하는 중국 등 아시아 국가로 넘어가고 있다”며 중국의 행위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미 재무부는 당초 이번주중에 외환조작국가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의회에 보고할 예정이었으나, 보고 시기를 APEC 회담 결과를 지켜본 이달말로 연기했다. 중국과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보다 강경한 통상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는 무언의 시위로 분석되고 있다.
아울러 부시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내 경제 문제를 아시아의 환율 방어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치적 색채가 강하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로선 경제적 접근과 함께 외교적 접근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일본보다는 중국에 보다 강하게 절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일본이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반면 중국이 이에 반대한 탓이라는 해석도 있다. 따라서 이라크 추가 파병 여부가 개별 국가별로 압력의 강도에 차이를 둘 가능성도 있다.
한편 미국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중국의 절대적 지원이 필요하므로 중국의 경제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위앤화 절상을 힘으로 밀어 부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 in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