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월街에서 본 백남준씨의 죽음

우리 시대의 거장은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금방이라도 나무 관을 걷어차고 나와 “페인트와 붓을 준비하고 망가진 TV를 가져와”라고 외칠 듯이 그의 얼굴에는 예술가의 정열과 혼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씨의 조문 의식이 맨해튼의 프랭크 캠벨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지난달 30일 세상을 떠난 백남준씨의 시신이 공개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조화와 조전을 전달하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문봉주 뉴욕총영사를 통해 조전을 전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공로명 전 외교통상부 장관,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손학규 경기도지사, 송태호 전 문화체육부 장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정치ㆍ경제ㆍ문화계 주요 인사들의 조전과 조화가 줄을 이었다. 하얀 조화가 사방을 둘러싼 장례식장에서 백남준씨는 평소 즐겨 입던 녹청색 마고자와 목도리 차림을 하고 마치 나는 ‘영원한 코리안’이라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잠들어 있었다. 백남준씨의 부인인 구보타 시게코 여사는 관 앞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며 연신 검은 안경테 너머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남편의 얼굴을 응시할 뿐이었다. 남편에게는 건반 무늬가 그려진 검은 목도리를 감싸주었고 자신은 건반 무늬의 하얀 목도리로 목을 감싸 남편과 함께하고픈 한 여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한국 정부 고위 인사들이 조문을 할 때마다 고개를 떨구며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이 광경을 지켜본 많은 현지 예술가들은 과연 한국 정부가 또는 사회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씨를 제대로 대접했는가에 의문을 던진다. 일각에서는 ‘부모가 죽고서야 호들갑을 떠는 못난 자식 같다’는 평가도 나온다. 백남준씨는 맨해튼 소호 지역에 백스튜디오를 포함해 4개의 작업실을 가지고 있다. 10년 전부터 중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작품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뉴욕 특파원 생활을 한 거의 2년 동안 수많은 한국 관료와 정치인들이 약방의 감초처럼 뉴욕 맨해튼을 들렀다. 하지만 그들의 방문 일정은 월스트리트 투자기관 최고경영자(CEO), 국제신용평가기관 한국 담당관 등과의 면담, 그리고 워싱턴 방문이었다. 백남준씨의 작업실을 찾는 것은 고사하고 전화로 안부를 묻는 정도의 수고도 없었다. 세계적인 거장이 사라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죽어서야 호들갑을 떠는 사회가 더욱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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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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