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전이 인류의 시위사를 다시 쓰게 했다.
주말인 15일 전 세계 주요 도시의 거리를 메운 반전 시위대의 규모를 놓고 주최측과 경찰은 엇갈리는 추산을 했지만 이번 시위가 사상 최대라는 사실에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반전 구호는 이날 맨 먼저 동이 튼 뉴질랜드에서 시작돼 아시아와 유럽과 미주, 중동 지역에 이르기까지 하루 종일 끊이지 않았다.
○…유례 없는 엄청난 시위 인파에 주최측과 경찰은 아전인수식으로 참가자 수를 추산했다. 단일 국가로는 최대의 인파가 모인 스페인의 경우, 시위 주최측은 전국적으로 400만 명 이상이 참가했다고 주장한 반면 경찰은 160만 명 정도가 모인 것으로 집계했다. 영국도 경찰은 75만, 시위 주최측은 200만 이상을 주장했다. 유엔본부 앞에 25만 시위대가 집결한 뉴욕에서는 경찰이 추산 수치를 아예 밝히지 않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인 50여 만 명이 시위에 나선 독일은 국민의 절반 이상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보다 오히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세계 평화를 더 위협하는 인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한 여론조사기관이 최근 1,002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4%가 부시가 세계 평화 위협 인물이라고 답했고 부시와 후세인 중 누가 더 위험한가라는 질문에는 38%가 부시를, 37%가 후세인을 지목했다고 보도했다.
○…항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갖가지 이색 시위 방법이 등장했다. 국제 항해대회가 열리는 뉴질랜드 오클랜드항에서는 “전쟁 반대, 이제 평화를”이라는 구호를 적은 대형 깃발을 매단 경비행기가 상공을 날았다. 100만이 운집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는 대부분이 총을 든 채 “미국을 물리치자. 시온주의를 배격하자”같은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도 10만여 명이 모였다.
■반전시위대의 목소리
"늙은 것은 유럽 아닌 미국" "프랑스반전 입장 끝까지…"
15일 미국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에서, 레바논 베이루트와 말레이사아 콸라룸푸르의 거리 거리에서 시위에 나선 사람들은 이라크전을 왜 반대하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외신이 전한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본다.
릴리 가르자(뉴욕 주부)=“나는 평생 이런 시위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제 아들은 공부할 기회를 더 가지려고 해군에 입대했지요. 그런데 이라크전을 위해 죽으라고요? 아니, 난 전쟁을 원치 않아요.”
지나 펠드먼(뉴욕)=“도저히 TV 앞에 멍하니 앉아 돌아가는 상황을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해 보려고 이렇게 거리에 나섰습니다.”
뉴욕 맨해튼 여성=“또 다른 전쟁을 기도하는 데 대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나왔어요. 아버지(1991년 걸프전을 치른 조지 부시 대통령)가 끝내지 못한 일을 아들(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이 끝내기 위해 수 만의 군인을 보내 죽이고 죽어야 하는 상황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제니퍼 코넬(런던)=“1960년대 시위 이후 처음으로 다시 거리에 나왔습니다. 후세인은 저지해야 하지만 그것이 전쟁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진짜 테러리즘이 무엇인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영화배우 마르셀 마르샬(프랑스 마르세유)=“이 전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늙은 것은 유럽이 아니라 구식 경찰국가인 미국입니다.”
마리-조르주 뷔페 프랑스 공산당 사무총장=“전쟁 반대, 평화 옹호를 위해 여기 왔습니다. 국제적으로 번져가는 반전 시위를 보니 우리가 세계시민임을 느낍니다. 프랑스 정부의 반전 입장이 마지막까지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베이루트 시민= “아랍 영토가 미국의 공격 거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미국은 우리의 석유를 빨아먹기 위해 피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미친 카우보이를 저지합시다.”
콸라룸푸르 시민=“미국은 이라크에 폭탄 대신 부시를 떨어뜨려라.
김용식기자
<미주한국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