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22일] 오펜하이머

결혼 예물로 쓸 다이아몬드가 너무 비싸다고? 어니스트 오펜하이머(Ernest Oppenheimer) 탓이다. 세계시장의 70~90%를 쥐락펴락하는 ‘드비어스’사의 독점구조를 만든 사람이다. 오펜하이머는 1880년 5월22일 유대계 독일 담배상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 최고의 갑부대열에 오른 자수성가형 인물. 16살에 영국의 다이아몬드 브로커사에 입사한 후 업계와 정치권을 넘나들며 세계적인 독점구조를 만들어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광고문구도 그가 퍼뜨린 것이다. 광산업의 이익을 대표하며 킴벌리 시장과 남아공 의회 의원을 지내던 그가 국제적 기업가로 성장하는 전기를 맞은 것은 미국인 광산가 허버트 후버와의 만남. 훗날 미국의 31대 대통령에 취임하는 후버의 소개로 JP모건의 자금을 지원받아 1917년 ‘앵글로 아메리칸’사를 설립한 후 피도 눈물도 없는 인수합병에 나섰다. 1925년에는 최대 회사인 드비어스사의 경영권도 따냈다. 오펜하이머는 대공황마저 기회로 바꾸었다. 드비어스를 완전 장악, 회장직에 오른 1929년 뉴욕증시발 공황과 새로운 광산 발견에 따른 공급 증가로 가격이 폭락하자 두 가지에 몰두했다. 다른 회사를 헐값에 사들이는 한편 재고를 쌓기 시작한 것. 한때 42억달러가 넘는 다이아몬드 재고는 가격 회복세에 따라 조금씩 출하되기 시작, 그가 사망하던 1957년까지 비싼 가격으로 시장에 나왔다. 오펜하이머와 드비어스의 성공에는 아프리카의 아픔이 깔려 있다. 600만명이 희생된 시에라리온 내전도 그의 후손들이 주도한 국제 카르텔이 원석 확보를 위해 부족간 감정싸움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수급 조절의 전설적인 귀재로 전해 내려오는 오펜하이머라는 이름은 흑인 수탈과 다이아몬드 잔혹사의 상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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