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포퓰리즘이 국가흥망 가른다] <11> 브라질 ① 두 얼굴의 룰라

삼바경제 재건·빈민구제 성공했지만 미래 투자는 낙제점<br>선진국 진입 위한 구조개혁 소홀<br>고임금·고세율·열악한 인프라 등<br>국가경쟁력 갉아먹는 고질병 여전<br>"현재는 좋지만 내일은 장담 못해"

상파울루 제1의 전자상가인 이파제니아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다. 브라질 경제가 최근 수년간 호조를 보이면서 자동차·가전 등 고가 소비재의 수요가 급속히 늘고 있다.


브라질 제1의 도시 상파울루시는 분주했다. 중남미 경제의 43%를 차지하는 브라질의 현주소를 상징하듯 시내 도로는 차들로 꽉 메워져 있었고 시내 곳곳에는 2014년 월드컵을 알리는 플래카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지난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반 세계 5대 강국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다면 상파울루는 21세기 새로운 부국으로 도약하는 브라질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떴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날지 못하는 닭의 날갯짓'에 비유되던 브라질을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끌어올린 변화의 중심에는 지난해 말 퇴임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66) 전 대통령이 자리잡고 있다. 그의 뒤를 이어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룰라는 여전히 브라질 정치의 중심이다. 그러나 브라질 현지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뜻밖에도 크게 엇갈리고 있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그가 사회적 약자를 챙기면서도 기업활동을 북돋우고 브라질 경제를 재건한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치켜세우고 있었다. 특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커지면서 그에 대한 향수는 갈수록 짙어지고 오는 2014년 대선에 룰라가 다시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반면 많은 지식인들은 그가 빈민구제 등 일부 정책에서는 성공했지만 집권 8년 동안 국가의 미래에 대한 투자는 소홀히 한 인기주의자라는 비판을 서슴없이 가하고 있다. 상파울루 시내 고급 아파트에서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에우자(41)씨는 "3명의 아이들이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해 직장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룰라 대통령 덕분"이라며 "그는 가난한 시민들의 친구이자 브라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남편 없이 혼자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그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예방주사를 맞히는 조건으로 정부 도움을 받는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 정책의 수혜자로 지난 4년 동안 매월 190헤알(12만원 상당)을 지원받았다. 그의 자녀들은 전기제품 제조업체와 슈퍼마켓의 종업원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2003년 취임한 룰라 대통령은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포퓰리즘적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우려를 딛고 전임 페르난두 카르도주 정부의 시장친화적인 정책들을 계승했다. 나아가 전임 정부의 고위관료들을 등용함으로써 재계와 해외의 신뢰를 얻어냈다. 룰라의 트레이드마크로 알려진 볼사 파밀리아 정책 역시 카르도주 정부에서 도입한 정책이다. 이와 함께 노동ㆍ사회보장ㆍ세제ㆍ농지 등 4대 개혁정책을 통해 사회양극화 해소에 나섰다. 그가 집권한 후 2008년까지 브라질 경제는 때마침 불어닥친 농산물 및 원자재 가격 급등에 힘입어 연평균 5%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잇따라 터진 대형 유전도 브라질 경제에 큰 행운이었다. 이 같은 경제호조와 저소득층 지원 정책에 힘입어 그의 집권기간 동안 3,000만명에 가까운 빈민층의 경제적 여건이 향상됐다. 상파울루에서 발행되는 시사지 브라질리우의 발행인인 훌리우 캄포스 멜루씨는 "시장친화적 정책을 취한 그를 포퓰리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브라질의 정치 모델을 따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 사진기자 출신인 멜루씨는 룰라 전 대통령이 노동운동을 하던 1980년대부터 그와 친분을 쌓아왔다. 멜루씨는 처음 룰라가 취임했을 때 전임 정부의 경제각료를 유임시키는 것을 보고 그가 성공할 줄 알았다고 한다. "그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라고 멜루씨는 평가했다. 그러나 룰라의 성공은 운이 따른 결과일 뿐이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브라질 코스트'로 알려진 고비용 구조는 여전하고 고임과 높은 세율, 부족한 인프라, 관료 부패 등 브라질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난제들도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판론자들은 룰라가 국가적으로 필요한 구조개혁은 모두 미뤄놓은 채 당장 인기에 도움되는 일만 하다가 갔다고 주장한다. 실제 브라질의 인프라는 열악하다. 당장 2014년 월드컵을 개최해야 하지만 경기장이나 공항 등 인프라시설 공사가 진척되지 않아 제대로 대회를 치를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브라질 정부 산하기관인 응용경제연구소도 현재 증ㆍ개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13개 공항 가운데 9개가 월드컵 개막에 맞춰 완료되지 못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취재일정 동안 기자를 안내한 한인 2세 기업인인 전모씨 역시 브라질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강력한 자국산업 보호정책이 국영기업이나 정부와 결탁한 기업들을 제외한 나머지 수많은 중소기업들의 설 땅을 없애고 있다는 것이다. 웬만한 상품의 수입관세가 50%에 달하다 보니 원단 등을 수입, 가공하는 의류업 등 소규모 제조업은 할 수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마르코 안토니우 비옐라(52) 사오 카를로 연방대 교수는 "경기가 좋을 때 선진국으로 나갈 수 있도록 개혁하고 투자해야 했지만 룰라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브라질이 현재는 좋지만 내일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라는 데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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