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과 경북궁을 동ㆍ서로 엮는 전통건축공간 사이에 한국 현대건축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현대건축의 두 거장 고(故)김수근선생과 故장세양 선생이 26년간에 걸쳐 완성시킨 `공간(空間)`사옥이다.
이중 김수근 선생이 71~77년 지은 구ㆍ신관은 전통과 서구건축 사이에서 우리 현대건축의 정체성을 세운 원형으로 평가 받는다.
◇둘러싸였으면서도 막히지 않은 공간=공간의 구ㆍ신관은 지하 1층ㆍ지상 5층에 연면적 408.3평의 철근콘크리트조 건물로 긴 장방형 모양을 하고 있다. 외벽은 검은 벽돌로 마감돼 있고 창이 많지 않아 언뜻 매우 폐쇄적인 건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건물내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 같은 선입관은 산산조각 나게 된다. 손을 조금만 뻗어도 닿을 듯한 낮은 천장, 금새라도 붙어 버릴 것 같은 양쪽 벽은 방과 같은 폐쇄된 공간으로 나눠지지 않은 채 2층까지 미로처럼 이어진다.
좁지만 답답하지 않은 느낌을 지난 이 같은 건축의 비밀은 반층 높이로 오르내리는 방식로 설계하는 `스킵 플로어` 구조에 있다. 사람의 키를 기준으로 한 층의 높이를 반층 크기로 압축시킴으로써 층으로 구획된 공간 개념은 없어지고 막힘 없이 이어진다.
이렇게 좁게 이어진 공간은 3층에 이르면서부터 갑작스레 확 트인다. 원형 계단과 중앙의 원형 구조를 둠으로써 1~2층과는 전혀 다른 드라마틱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한국적 현대건축을 찾아서=공간사옥은 김수근 선생이 55년의 짧은 생애동안 만들었던 200여 편의 작품 중 가장 애착을 담았던 건축물이다. 7여년간의 건축작업 중 짓다 부수기를 수 차례나 거듭했을 정도.
그가 건축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60년대에는 일제식민적 근대건축과 한국전쟁 이후 주체성없이 받아들인 서구건축문화가 뒤섞여 있었다. 이에 깊은 회의를 가졌던 김수근은 60년대 말 전통과 현대미술에 정통한 미술평론가 최순우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한국적 조형과 공간의 아름다움을 배우게 된다.
공간사옥은 이처럼 한국적 현대건축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탄생한 초기 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또 단순한 건축적 의미를 넘어 문화운동 산실역할을 해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