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현기차와 현기증


현기증 나도록 달려왔다. 현대·기아자동차의 질주는 21세기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단시일 안에 세계 4위를 넘보는 글로벌 업체로 성장한 사례는 현대·기아차가 유일하다. 현기차의 도약은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을 위한 임직원들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내수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내외 생산분 가운데 절반은 한국에서 팔린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는 나라 중에서 한국처럼 국산차 점유율이 높은 나라도 없다.


△수년 전 차를 바꾸려 하자 후배 하나가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차로 수입차종을 권해 놀란 적이 있다. '기자가 어떻게 외제차를 탈 수 있냐'고 반문했을 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후배의 표정이 뇌리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비슷한 생각에서 같은 품질과 가격이라면 국민들은 토종 메이커를 골라왔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3% 남짓하던 연간 상승률이 두 자리에 달해도 국산을 선택한 소비자 덕에 자금력이 좋아진 현대차는 글로벌시장에 공세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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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현대·기아차가 주춤거리는 것 같다. 수입자동차의 점유율이 높아지고 각국의 견제도 심해졌다. '국산차'에 대한 인식도 갈수록 떨어질 게 뻔하다. 내수시장을 되찾을 방안은 없을까. 답은 소비자 신뢰뿐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연비 과장 집단소송에 걸려 보상금 4,871억원을 지급할 계획으로 알려진 현대·기아차가 국내 소송에서는 이겼다. 판단은 법원이 내렸지만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불신만 높아질 수 있다.

△기꺼이 성장의 밑거름이 돼준 국내 소비자를 중시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성장이 어려워질지 모른다. 수입차에 못 미치는 연비를 끌어올리고 국내 소비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때만 밝은 미래가 가능하다. 현대차가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를 통해 세계에 첫 고유모델을 알렸던 1974년 포니와 함께 출품된 포니 쿠페의 외형에 홀딱 반했던 까까머리 중학생은 중년이 되어서도 멋진 국산차를 보면 가슴이 뛴다. 현기차의 현기증 나는 질주를 보고 싶다. /권홍우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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