黨政 압박·대선 겨냥 다목적용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23일 '공적자금 국정조사 차기정부 연기시사' 발언은 좁게는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압박용이지만 넓게는 연말 대선정국을 겨냥한 다목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 후보는 고위선거대책회의에서 "형식에 그쳐버릴 우려가 있는 국정조사라면 할 필요가 있는지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어차피 이 문제는 다음 정권에서 좀더 세밀하게 조사하고 공자금의 처리와 책임문제 그리고 앞으로의 처리를 위한 규범으로서 여러 과제를 세우는 문제에 관해 철저하고 엄격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공적자금 국정조사가 여야 합의로 시작됐지만 예비조사 단계에서부터 감사원 등 정부측의 자료거부가 계속되고 있고, 한나라당이 요구한 증인채택문제도 이날 오후 열린 공적자금 국조특위에서부터 민주당이 핵심 인사들에 대해 '철벽 방어벽'을 치고 나서 국조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공적자금 국조를 연말 대선까지 끌고 가야 할 한나라당으로서는 자료제출 거부와 핵심인사들의 증인채택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국조가 계속될 경우 156조원 규모의 공적자금의 집행ㆍ운용 실태에 대한 규명은 커녕 국민의 정부에 면죄부만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공적자금 국조의 기관보고(10월4~5일)와 청문회(10월7~9일)가 모두 부산 아시안게임 기간에 열려 국민적 관심을 얻기가 쉽지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감안한 다각적인 포석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이 후보의 언급이 단순한 '엄포용' '압박용'이 아니라 차기 정부에서 국조를 하는 게 더 낫다는 '강경론'도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와 관련, "한나라당이 언론을 통해서 정치공세는 다해놓고 막판에 가서 발을 빼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송영길 특위 간사는 "국회 본회의에서 합의한 사안을 한나라당 이 후보가 말 한마디로 바꾸려고 한 것은 제왕적 후보의 행태를 보여준 것"이라고 꼬집은 뒤 "당초 예정대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회 공적자금 국정조사특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청문회 출석 증인ㆍ참고인 선정문제 등을 논의했으나 주요 증인을 둘러싼 한나라당과 민주당간 이견 등으로 진통을 겪었다.
한나라당측은 이날 민주당 간사인 송영길 의원의 위원 자격을 문제삼아 위원 사퇴와 국조기간 20일이상 연장을 요구한 데 이어 다음 달 7일부터 사흘간 실시 예정인 청문회와 관련, 대통령 차남 김홍업씨와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증인으로 반드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이회창 후보의 선거운동장으로 만들자는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양정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