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외환위기(Currency Crisis)는 아직도 진행형(?)`
지난 97~98년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아시아 각국의 노력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아직도 먹구름은 완전히 걷힌 게 아니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경제 성장률 회복, 신용등급 상승, 외환 보유고 급증 등 각종 경제 지표들은 5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호전됐지만 외환위기의 완전한 극복을 위해선 아직도 미해결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부실채권 문제는 여전히 아시아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과도한 외환 보유고 역시 미국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는 오히려 위험이 될 공산이 큰 상태다.
◇경제 지표는 상승 곡선=영국의 경제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아시아 외환위기와 관련된 특집 기사를 통해 "아시아 경제는 지표상으로는 분명히 회복기에 접어 들었다"고 보도했다.
아시아 국가들의 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 지난 2000~2002년 3년간 각각 7%, 3%, 5%를 기록하는 등 비교적 건실한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마이너스 6.8%였던 경제성장률이 99년과 2000년에는 각각 10.9%와 9.3&로 급반전됐다. 중국도 이 기간 동안 7~9% 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해 왔다.
외환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됐던 외환 보유고 부족 문제도 통계상으로는 깨끗이 해결된 듯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02년 3월말 현재 아시아 지역의 외환 보유고는 총 7,600억 달러로 이는 97~98 외화위기 당시 아시아를 빠져나갔던 액수의 6배에 달한다.
특히 중국은 수출 증가와 해외 직접투자(FDI)의 급증으로 외환 보유고가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외환위기 당시 외환 보유고가 39억 달러에 불과했던 한국 역시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1,170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세계 4대 외환 보유국으로 올라섰다.
외환위기 당시 급격히 추락했던 아시아 각국 기업들의 신용등급도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에 따르면 2001년 11월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상향 조정한 것을 시작으로 S&P, 무디스, 피치 등 3대 신용평가 기관들은 지난해 상반기 동안에만 한국ㆍ말레이시아ㆍ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에 대해 총 9번의 등급 상향 조정을 했다.
JP 모건체이스의 이머징 마켓 담당자인 데이비드 페르난데즈는 "전세계 경제, 특히 아시아를 제외한 이머징 마켓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회복세가 견고하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전 수준 회복 요원=외환위기 이후 경제 성장률, 외환 보유고, 신용등급은 물론 물가, 주가, 금리, 환율 등 여타 경제 지표 역시 전반적으로 호전됐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 지표의 개선은 `수적인 환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 한국과 중국, 홍콩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경제 성장률은 아직 외환위기 직전의 수준으로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과 홍콩이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피해갔던 지역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외환위기 전의 수준으로 회복된 곳은 한국 하나 뿐이란 결론이다.
과도한 외환 보유고도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오히려 아시아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와 관련, 아시아 국가들이 막대한 외환 보유고를 97~98년 때와 같은 위기에 대비한 일종의 `안전 장치`로 생각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아시아의 외환 보유고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막대한 외환 보유고를 건실함의 상징이라기보다 내수 감소와 수출에 지나치게 치우친 불균형적인 경제 모델 및 허약한 금융시스템의 결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과도한 외환 보유는 달러화 가치의 급속한 하락시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국제금융연구소의 그레고리 페이저 아태국장은 "아시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제 더 이상 외환 보유고를 쌓을 필요가 없다"며 "외환을 은행에 예치해 두는 것보다 장기 채권 또는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나 부채 감축 등 더 낳은 사용처를 찾아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AWSJ는 아시아 지역의 신용도가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환위기 당시 국가 신용등급이 급격하게 추락했던 몇몇 아시아 국가들의 신용등급은 여전히 외환위기 이전보다 몇 단계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향후 1~2년간은 등급 상향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페르난데즈는 이에 대해 "아시아 국가들의 펀더멘털은 개선되고 있지만 최근의 경제 변화를 고려할 때 당분간 등급이 추가 상향될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김창익 기자 windo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