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대륙’ 유럽이 연금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평균 수명 증가로 연금 지출은 늘고 있는 반면 출산율 저하로 연금 수입이 갈수록 줄어들어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조만간 연금 재정이 바닥을 드러낼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영국이 먼저 연금 개혁에 시동을 건데 이어 독일과 프랑스 등도 연금 개혁에 본격 나설 태세다. 영국 정부의 후원을 받아 연금 제도 개혁안을 준비해온 연금개혁위원회는 30일(현지시간) 퇴직 연령 상향 조정과 강제연금저축 도입을 골자로 한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다. 연금 개혁위원회는 현행 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영국의 부양 비율(20~64세 경제 활동 인구에 대한 65세 이상 노인들의 비율)은 현재 27%에서 향후 30년 안에 45%로 증가할 것으로 분석, 퇴직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2050년까지 68세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금 위원회의 터너 위원장은 “고령화 추세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효과적인 연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2050년 연금 수혜 개시 연령이 67~69세가 돼야 한다”며 “현 단계에서 중간 나이인 68세를 기준으로 제시한다”고 말했다. 연금위원회는 2030년에 66세, 2040년 67로 각각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개혁위원회는 또 정부 연금에 대한 일방적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기업과 근로자,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강제 연금 저축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이 제도는 근로자가 자동으로 가입하게 되며 급여의 5%, 기업이 3%, 정부가 1%를 각각 부담하게 된다. 단 가입 이후 근로자들은 자유롭게 탈퇴할 수 있다. 개혁위원회는 이와 함께 자녀 양육 등으로 근로기회를 박탈당한 여성을 위한 특별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최저 연금 수령액도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터너 위원장은 “연금 수령액이 적은 여성의 생계를 지원할 수 있는 별도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여성 연금 보조 등을 시행하면 연금부문에 대한 영국의 공공지출은 현행 국내총생산(GDP)의 6.2%에서 2045년에는 7.5~8%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연금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연방 하원에서 행한 첫 시정 연설에서 임기 내 연금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연정은 현행 65세인 퇴직 연령을 오는 2035년까지 67세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다. 지난 2003년 이후 연금 개혁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하고 있는 프랑스도 내년 대선 직후 본격적인 연금 제도 수술에 나설 방침이다. 그러나 연금 개혁안에 대해 근로자들의 반발이 심한데다 정치적 이해관계도 얽혀 있어 유럽 연금 개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지는 미지수다. 실제 이날 영국 연금개혁안에 대해 노동계는 물론 재계도 크게 반발했다. 노동계는 퇴직 연령을 상향 조정하는 것은 근로자의 권익을 무시하는 조치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강제연금 저축에 따른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영국 상공회의소는 강제저축으로 인해 기업들의 추가 부담이 생길 경우 기업들은 직원을 해고 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영국 정부는 이 연금개혁안을 바탕으로 재계, 노동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정부의 연금개혁 방향을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