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몇 해 전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라는 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정보통신 기술을 보유하고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 불가피하게 빈부격차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과 노동 같은 전통적인 생산요소보다는 정보와 지식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면 그러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쪽이 더 높은 소득을 올리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 정보화가 진전되면서 과거 아날로그 때는 없었던 새로운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이른바 디지털 계층이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근로소득의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통계청의 조사결과도 이 같은 디지털 디바이드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것만으로 갈수록 심화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와 같은 부동산본위경제에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부동산이 부의 형성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富의 양극화 최대 주범 부동산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이지만 땅값,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 이후 균형발전 차원에서 전국에 걸쳐 개발계획이 쏟아지면서 땅값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부동산투기를 막기 위해 강도 높은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지난 2년 동안 전국 땅값은 평균 32%나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 전체 땅값도 2,000조원을 넘어섰다.
기준시가의 상향조정을 감안하더라도 연간 경제성장이 5%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부동산 불패 신화는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숱한 고위층들이 부동산투기에 연루돼 여론재판을 받고 물러나는 데서도 재산을 불리는 데 있어서 부동산이 얼마나 확실하고 위력적인 수단인가가 거듭 확인되고 있다. 부동산가격 안정과 투기근절이 역대 모든 정권이 내거는 단골 메뉴였지만 평당 몇 만원짜리 땅이 몇 백만원이 됐다는 식의 뉴스는 거의 일상이 되고 있다. 당시로서는 거의 혁명적 조치라는 평가를 받았던 부동산 공개념과 부동산실명제도 고질적인 부동산본위경제를 바꾸지는 못했다.
문제는 이처럼 확실한 재테크 수단이 부동산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부동산은 그림의 떡이라는 데 있다. 부동산투자는 국민의 몇 %에 불과한 지주들과 정보와 자금력을 가진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부를 늘리는 가장 확실한 재테크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구조만큼 부의 빈익빈 부익부를 확실하게 심화시키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설문조사에서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갈수록 줄고 있는 것도 ‘부동산 디바이드’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형편과 분배를 강조하는 참여정부지만 치솟는 땅값, 집값 소식에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과거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외환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정착되면서 은행 돈을 빌려 아파트를 비롯해 부동산을 구입하는 가계가 크게 늘어나고는 있다. 부동산시장 참여자가 크게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은행 돈이 지나치게 부동산에 투입된 결과는 가계발 금융위기론이다.
고비용 저효율 심화로 경쟁력 약화
경쟁력 약화로 집약되는 한국병의 근본적인 원인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값과 집값 때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구나 부족하다고 수입할 수도 없는 부동산의 가격의 경쟁적 상승은 기본적으로 군비경쟁과 비슷한 데가 있다. 적절히 통제되지 않고 무한정 지속되는 경우 종국에는 파멸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비싼 주거비는 임금인상 요구로 나타나고 높은 땅값과 비싼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문을 닫거나 생산비를 낮출 수 있는 곳으로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부의 양극화를 촉진하는 부동산 디바이드가 심화되는 경우 고르게 잘사는 사회건설도 어렵게 된다. 부동산투자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다수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계속 아래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팔프스 교수는 ‘사회조직의 허리격인 중산층이 줄게 되면 자유기업 시스템을 위태롭게 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 그리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좌절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서 부동산가격은 안정돼야 한다. 부동산 디바이드의 함정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