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1342~1398)이 조선의 새 수도를 지금의 서울로 정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개국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민생안정을 위해 수도이전을 유보하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새 수도가 결정되자 이후 추진과정은 정도전이 주도하게 된다. 신도시 설계는 '주례(周禮)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에 보이는 수도건설 원리에 따랐고 여기에 우리나라 자연환경을 덧붙였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정궁인 경복궁을 두고 좌우에 종묘(동쪽)와 사직(서쪽)을 배치했다. 이어 종로거리를 조성하고 행정구역을 정리했다. 시대적으로 볼 때 유학자들의 공치를 주장한 정도전의 의견은 군주전제를 내세운 이방원(후에 태종) 세력과 충돌한다. 반대파에 제거된 후 그의 개인적 가치는 축소됐다. 그렇지만 선비 주도의 유교적 이상국가를 지향한 이론은 남아 조선사회를 이끌어간다. 종묘앞 공원에는 '삼봉정도전시비'가 있다. 앞면에는 그가 죽기 4개월 전인 1398년 4월 지은 '신도팔경시(新都八景詩)'가 새겨져 있다. 새 수도의 풍수지리를 소개하고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이 지속되기를 노래한 내용이다. 사진은 시비의 뒷면으로 정도전의 초상과 약력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