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위스키의 몰락


'술은 입으로 오고/사랑은 눈으로 오니/그것이 우리가 죽기 전에 알아야 할 진리의 전부다.' 아일랜드의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음주 찬가(A Drinking Song)'에서 술을 사랑과 함께 최고의 가치로 평가했다. 목 넘김의 짜릿함, 한잔 술 뒤에 오는 카타르시스는 그 어떤 것과도 바꾸기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서양에서 '생명수(water of life)'라는 뜻을 따 위스키를 만들었고 '달빛(moonshine)'이라는 애칭을 빌려 보드카를 탄생시켰다.


△양주 문화가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전파된 것은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외국과 문물 교류가 이뤄졌던 19세기 말. 일제시대에는 위스키 수입이 늘어나면서 양주 판매량이 전통주의 10%까지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부 계층에만 부여된 특권일 뿐 1970년대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양주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고급주였다.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서민들은 길가에 늘어선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맥주 한컵으로 애환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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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가 대중 속으로 파고든 건 1980년대 이후.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권력층의 음주 문화가 세간에 알려지면서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바스리갈을 즐겨 마셨다는 소문은 '도대체 어떤 술이냐'는 대중의 궁금증을 유발하며 판매량을 크게 늘렸다. 1986년 군 장성이 국회의원을 폭행했던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사건'도 위스키 소비에 불을 붙였다. 당시 사건 그 자체보다도 이들이 마신 폭탄주가 세간의 관심을 끌며 그해의 최고 유행어로 등극했고 위스키는 회식에서 빠져서는 안 될 단골 메뉴가 됐다.

△그토록 위세 당당했던 위스키도 불황만큼은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올 상반기 판매량이 91만6,745박스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5% 감소했으니 말이다. 이대로 가다간 6년 연속 감소에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게 뻔하다. 하긴 줄어든 게 어디 한둘이랴. 전세와 월세 내느라 가계 살림이 쪼그라들고 사는 게 힘들다고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일 자리도 제대로 못 갖는 신세인데…. 그나마 소주와 맥주가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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