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슈 인사이드] 오토바이 무법 질주 등 곳곳 위험… 걷고 싶은 人道 만들어야

광고판·리어카·車 등 뒤엉켜 차도로 걸어가야 하는 경우 많아<br>작년 보행자 사망 2,000여명 OECD 회원국 평균 두배 이상 높아<br>시범거리 조성 등 확실히 보장을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거리에 오토바이가 지나가자 걸어가던 시민들이 피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거리에 불법 주차된 차량이 인도를 가로막고 있어 시민들이 지나가기 힘들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걷는 것은 고도의 정신집중과 주의가 필요한 일이다. 언제 튀어나올 지 모르는 오토바이와 부딪히지 않으려면 이따금 들려오는 엔진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혹시 모를 움푹 패인 곳이나 걸림돌은 없는 지 발 밑도 잘 살펴야 한다. 사람 크기만한 광고판이나 보도를 가로막고 있는 차들도 피해가야 한다.

가끔 있는 일이 아니다. 너무나 일상적이다 보니 사람들은 어느 순간 불편과 위험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지경이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심가도 마찬가지였다. 숭례문 앞에서 출발해 남대문시장을 거쳐 명동, 충무로, 종로를 통과하는 길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 피곤한 길이었다. 인도(人道)를 지나가는 도중 5분에 한 번씩 오토바이에 길을 내줘야 했고 광고물과 리어카가 길의 절반 이상을 잡아먹은 곳에서는 좁은 틈을 두고 사람들이 번갈아 가는 과정에서 일시적인 정체현상이 발생했다.

인도로 더 이상 갈 수 없어 차도로 걸어가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빼곡한 상자들 사이로 용접 작업까지 벌어질 때는 차라리 찻길이 더 안전해 보였다.

시민 대부분은 걷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다. 명동에 쇼핑을 나온 한 40대 여성은 "시내 중심가를 걸어갈 때는 긴장을 놓으면 안된다"며 "오래 전부터 겪어왔던 일이라 불편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매일 충무로 인근을 오간다는 이 모(33ㆍ여)씨는 "인도로 다가오는 지게차나 오토바이 때문에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라며 "작업 때문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내가 다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뭔가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시민들은 인도에서 겪는 위험과 불편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이미 익숙해져 개의치 않는다', '그냥 참을만 하다'는 의견들도 내놓았다.

그러나 우리가 걷는 길은 그냥 참고 넘어가기에는 위험이 도를 넘어선 것이 현실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길을 걷다 차에 치여 죽은 사람은 2,029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39%에 달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2009년 기준 회원국 평균(17.8%)의 두 배에 달하며 뉴질랜드(8.1%)나 네덜란드(9.8%)와는 비교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인도에 놓여진 불법 적치물에 부딪혀 다치거나 갑자기 튀어나온 오토바이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정신적 피해, 가로막힌 인도를 피해 차도로 걸어갈 때 감수해야 하는 위험 등까지 고려하면 우리가 걷는 순간은 바로 위험에 노출된 것과 똑같은 셈이었다.

결국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보행권을 실질적인 권리로 정립하고 보행자 보호의무를 담은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이 지난 달 14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올 하반기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서울시도 이달 말 박원순 시장의 주도 하에 보행 여건 개선책이 담긴 '보행자 권리장전'을 발표할 계획이다. 박 시장이 오랫동안 깊은 관심을 가져온 보도블록 부실 해결을 포함한 안전 확충 방안이 주요 내용이다.


중앙ㆍ지방정부가 잇따라 보행권을 강조하고 있지만 법과 제도로 보행권을 보호하기에 앞서 시민들의 사고방식이 바뀌기 전까지는 근본적으로 보행권이 보장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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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예로 현행 도로법이나 도로교통법 등을 통해 보행권을 보장하는 여러 규정들이 존재하고 이에 대한 단속도 이뤄지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도로교통법 제 13조에는 분명히 차마(車馬)의 운전자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서 차도로 통행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 제 32조에는 보도상 정차와 주차도 금지돼 있으며 또 도로법 제 38조는 도로를 점용하려면 관리청에 허가를 받도록 돼있다.

이 같은 법률에 의거해 서울시가 이달 중 보도 위 불법 주ㆍ정차 집중 단속에 나서고 경찰에서는 수시로 이륜차의 인도 통행을 적발하지만 지금까지 개선이 잘 안되고 있다.

결국 아무리 보행법 등이 발효되더라도 시민들이 나서지 않으면 우리의 보행권은 제자리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서울시 도시안전실의 한 관계자는 "관계 법령에 따라 단속도 주기적으로 했고 홍보도 했지만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방식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며 "시민들이 스스로의 위험이나 불편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인지하고 서로 지켜주고 보호받는 의식 변화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은희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보행권 침해에 관해서는 시민 스스로가 행위자이면서 피해자"라며 "보행권은 곧 기본권이라는 인식하에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구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속과 계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우선 시범거리를 조성해 보행권을 확실히 보장함으로써 시민들 스스로 보행권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점차 이 문화가 확산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 사무국장은 "시민들이 일정 구간을 걸어보며 느꼈던 보행환경 개선 필요사항들을 수시로 문제 제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민들이 지나친 너그러움을 거둬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회사원 이능택(32ㆍ남)씨는 "먹고 살기 바쁘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라고 방치했다 우리 아이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일"이라며 "서로 엄격하게 기본을 지켜 가면서 다음 세대에게 더 좋은 보행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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