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금난 방치" 여론의식 돈줄풀기은행 신용대출 활성화
은행권이 신용대출 활성화를 위한 방안마련에 착수하기로 한 것은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에 소극적이라는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지난달 기업자금 안정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가 서둘러 은행들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우량 대기업들의 경우에는 회사채 차환발행 등에 큰 문제가 없지만 6대 그룹 이하 일부 중견기업들과 중소기업들은 자금조달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에서 다양한 대책들을 늘어놓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중견·중소기업 자금난 여전
현재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신용도에 따라 극심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보이고 있다. 우량 대기업들의 경우는 회사채 차환발행 등에 별 어려움이 없지만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기업들은 회사채 만기도래가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자체적인 신용으로는 차환발행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
정부 압박…공동기준 마련등 겉으론 자발적
"무작정 지원은 곤란" 반발로 실효성 미지수
실제 은행들은 여신운용에 보수적으로 나서면서 신용위험이 높은 중소기업이나 차입규모가 큰 중견기업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 보면 우량 중소기업들은 그나마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작아 어느 정도 지원할 수 있지만 나머지 기업에 대한 무작정 지원은 곤란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지난달 23일 내놓은 기업자금 안정대책도 이 부분을 해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은행의 기업자금 지원원칙을 재정립하고 제도나 관행도 뜯어고쳐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은행들 어떻게 움직이나
은행들은 오는 18일부터 운영되는 공동 실무작업반을 통해 신용대출 기준을 전면 재검토하고 신용대출이 부실화될 경우 책임을 묻지 않도록 내규에 명확하게 규정할 방침이다.
또 지점장 전결한도가 적정한지를 재검토하는 한편 여신전결 등의 과정이 보다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모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우선 실무작업반을 중심으로 각 은행의 신용대출 기준이나 제도를 전면 비교·검토한 뒤 상대적으로 시스템이 완벽하게 구축돼 있는 은행을 모델로 삼아 개선책을 찾을 계획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정부가 아무리 좋은 대책을 내놓아봤자 은행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며 『은행의 자율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신용대출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
그러나 기업별 규모나 신용도의 격차가 여전히 큰 상황이기 때문에 은행들이 뒤늦게 여러가지 신용대출 활성화 방안마련에 나선다고 해도 기업들의 자금난이 당장 일거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도 겉으로는 「자발적」 대책마련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정부와 여론을 의식해 마지못해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기업 자금지원은 은행별 여신정책에 따라 제각각 할 문제이지, 은행들이 공동으로 기준을 만든다고 해서 활성화될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IMF사태 이후 기업자금난이 극에 달했을 때에도 정부는 은행권에 대해 별도의 신용대출 면책기준을 만들 것을 여러차례 종용했고 이에 따라 각 은행들이 이를 내규에 반영해놓았지만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금감원의 검사가 끝나면 은행장 등 경영진부터 책임자까지 수십명씩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정부의 말만 믿고 무작정 자금을 풀어 부실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은행들의 항변이다.
이진우기자RAIN@SED.CO.KR
입력시간 2000/09/0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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