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새한그룹/자율근무… 직급파괴… 비디오왕국 구축(재벌)

◎팀제·아이디어공모등 역동적 조직 자랑/사원들 「프로되자」결의 “2005년 20대그룹”「8·5제냐, 7·4제냐」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제일합섬과 새한그룹 계열사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으로 사옥을 옮긴 95년말. 새한의 새식구가 된 제일합섬과 기존 새한 그룹 계열사가 한 곳에 자리를 잡자 그룹기조실이 당장 해결해야할 과제가 생겼다. 삼성계열사였던 제일합섬은 상오 7시에 출근, 하오 4시에 퇴근했지만 새한 계열사들은 이보다 1시간 늦게 나와 1시간 늦게 퇴근했다. 같은 사옥에서 한솥밥을 먹어면서도 출퇴근 시간이 차이나는 바람에 그룹차원의 화합과 결속을 다지는데 적지 않은 장애요소로 작용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상이한 출퇴근시간으로 새식구와 기존 가족간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고민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제일합섬이 새한그룹에 흡수됐기 때문에 의당 새한그룹의 출퇴근시간이 적용될 것이라는 예단은 빗나갔다. 그룹 기조실은 「자유근무시간제(Flexible Time)」를 내놓았다. 특정문화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사정에 맞게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새한 계열사들은 지난해 4월부터 8시간 근무원칙만 정하고, 부서간 팀간 자율적인 근무시간을 정했다. 새한직원들은 플렉시블타임제야말로 삼성문화와 기존 새한문화가 화학적으로 결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고 있다. 새한그룹의 모태는 창업주인 고 이창희회장(이병철삼성그룹창업주의 차남)이 지난 73년 미국 마그네틱 미디어와 합작으로 설립한 마그네틱 미디어코리아. 새한은 기존 제품보다 가격과 품질 경쟁력에서 앞선데다 80년대 VCR의 보급확대로 비디오 사업이 급성장하면서 사세를 키워 왔다. 새한이 현재와 같은 그룹의 형태를 갖춘 것은 90년이후다. 새한콘크리트(90년), 새한이동통신(92년), 황성통운(94년), 디지탈미디어(94)등을 설립, 사업다각화에 나선 것이다. 특히 지난 95년 7월 제일합섬이 삼성에서 분리돼 새한의 새식구가 되면서 외형이 크게 늘었다. 새한미디어의 매출이 96년말 6천억원인데 비해 제일합섬의 경우 8천5백억원에 달해 제일합섬의 가세는 새한그룹 성장의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됐다. 제일합섬 흡수는 단순히 그룹외형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보수적 색채가 짙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문화가 삼성스타일이 가미되면서 그룹의 컬러도 함께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가끔 어느새 변화된 사고방식과 의식구조에 스스로 놀랍니다. 별 중요성 없어도 무의식적으로 최고경영진에 보고하던 타성이 사려졌고, 부하직원들에게도 간결한 결제서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줄 맞추는데도 신경을 쏟아야할 정도로 딱딱하던 월례조회가 자연스런 분위기속에서 치러지는 것도 큰 변화입니다.』 새한미디어의 곽훈영경영지원실장은 『과거 미디어 한우물만 파던 시설 생존의식이 지배했다면 지속적인 사세확장에 들어선 90년이후에는 비전 창조에 몰두하게 됐다』고 말했다. 새한미디어는 87년 건설한 세계최대규모의 청주공장이 준공 1년만에 발생한 화재로 생산력 83%를 소실했고, 91년7월에는 창업주가 갑작스레 타개하는 어려움을 딪고 세계최대시장점유율(22%)을 기록하는「비디오왕국」을 재건했다. 새한그룹은 지난 2월 제일합섬을 (주)새한으로 개명한데 이어 4월에는 「노사화합및 CI선포식」을 가졌다. 그룹출범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성대한 행사였다. 새한그룹 이자리에서 올해를 그룹 원년으로 선포하고 국내 8개 계열사가 공동으로 사용할 기업이념과 사원정신, 슬로건, 심볼마크, 로고등을 확정했다. 이영자회장은 CI선포식에서 「창조하는 경영으로 신뢰받는 기업을 이룩한다」는 경영이념을 선포했다. 또 사원정신으로 「프로정신」을 정했다. 이와함께 그룹사업군을 ▲정보미디어 ▲전략소재 ▲생활서비스등 3개 부문으로 나누어 육성키로 하고 오는 2005년까지 총 5조4천억원을 투자, 그룹매출액 12조원으로 재계 순위 20위권에 진입한다는 중장기 성장전략도 발표했다. 새한그룹이 임직원들에게 강조하는 하는 덕목은 자율과 책임이다. 자유근무시간제도 따지고 보면 자율과 책임경영의 소산이다. 새한은 올들어 전통적인 부단위 조직의 벽을 헐고 팀제를 도입했다. 이로 인해 대리급에서 부터 이사급에 이르는 팀장이 탄생했다. (주)새한의 경우 연간 6백억원대 원사수출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에 대리급 직원을 임명했다. 다른 기업에서는 선뜻 실행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결재단위를 최소화하고 조직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이 제도로 임직원마다 책임의식이 한층 높아졌다. 탐단위별로 자율성이 향상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새한그룹에는 사내 공모제라는 것이 있다. 이 제도는 직원들이 업무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사업화에 반영하기 위한 일종의 사내 벤처제도다. 직원들이 사업화 아이디어를 최고 경영층에 제출하면 경영진은 이를 검토, 과업부여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공모내용은 오직 본인과 경영진만이 알고 중간층에는 일체의 비밀이 보장된다. 업무에 맞춰 사람을 강제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에 대한 선택권을 직원에 부여하는 셈이다.(주)새한의 노춘호경영지원담당이사는 『획일적이고 과거를 답습하지 않는 유연한 조직,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자는 경영진의 뜻이 담겨있다』고 소개했다. 나아가 시스템통합업체인 새한정보시스템은 지난달부터 출퇴근시간과 근무복장을 자율화하고 부서와 연공서열식 직급도 폐지한 「직장파괴」를 단행했다. 팀단위로 업무를 맡아 일정한 부서가 없고 이에 따라 과장·부장과 같은 직급도 없는 파격적인 근무형태로 재계에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간의 조화가 이뤄져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선대회장 타계후 미망인인 이영자회장이 신규투자와 인사등을 주도하면서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가운데 장남인 이재관새한미디어사장(34)과 차남인 이재찬디지탈미디어사장(33)이 오너체제에 가세하고 있다. 전문경영인으로는 한형수(주)새한부회장과 심종진새한미디어대표이사, 김성재기조실장등이 포진돼 있는데 주로 삼성그룹 출신이 많다. 오너와 전문경영체계의 조화로 (주)새한의 추진력이 한층 높아지게 됐다. 거대조직 삼성그룹에 속했을 때 의사결정이 지연되거나 투자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으나 새한그룹에서 재출발함으로써 스피드와 힘을 얻게됐다는 지적이다.<권구찬 기자> ◎「여장부」 이영자회장/일할맛나는 직장 추구/전문경영인에 전권위임/임원인사·새 전략사업등/주요 사항들만 결정 이영자새한그룹회장은 재계에 흔치 않는 여성최고경영자다. 이회장은 부군이자 창업주인 이창희회장이 지난 91년7월 갑작스레 타계하자 그룹총수에 취임한 이래 새한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회장은 선대회장이 타계하기 전인 지난 84년부터 새한미디어 감사로 경영에 참여해왔으며, 당시에는 주로 선진기술의 동향이나 새로운 경영기법에 대한 조언을 선대회장에 한 정도에 그쳤다. 이회장은 새한그룹의 총수지만 그룹을 대표해 전면에 나서는 일은 극히 드물다. 재계행사등 외부행사에 거의 참석하지 않고 있다. 그룹차원의 신규투자와 임원인사·신규 전략사업의 방향등 굵직굵직한 주요 의사결정만 직접 챙기고 있다. 때문에 계열사별 투자와 사업방향등에 대해서는 전문경영인에 전권을 위임하고 있다. 외유내강형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이회장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살려 사풍관리와 사원복지등 최고경영층이 간과하기 쉬운 세밀한 부분을 직접 챙기고 있다. 사재를 털어 무주택 직원들을 위한 주택기금을 조성, 운영하는등 일맛나는 직장 분위기 조성에 상당한 신경을 쏟고 있다. 이회장은 일에 대한 의욕과 집념은 대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대회장 타계이후 회장에 취임했을 당시 세계 비디오테이프업계는 과잉공급으로 인한 불황의 골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새한으로서는 업친데 덮친격이었다. 이회장은 원가경쟁력만이 생존의 길이라 확신하고 해외시장 개척을 독려했다. 92년 미국과 멕시코에 판매및 생산기지를 세워 유럽과 미주·한국을 연결하는 3개국제화축을 완성했다. 미주 판매법인은 법인 설립 3년만인 지난해 매출 1억달러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새한은 미주시장 공략 성공에 힘입어 세계시장 점유율 22%를 기록, 세계 1위자리로 올라서는 저력을 보였다. 90년대초 벌어진 미디어전쟁에서 이회장의 경영수완이 유감없이 발휘된 셈이다. 선대회장이 국내 비디오 테이프 업계 최초로 유럽시장을 타겟으로 하는 아일랜드 사업장을 건설, 국제화의 씨앗을 뿌렸다면 이회장은 선대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국제화의 기틀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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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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