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분양

[건축과 도시] 새로운 마을공동체로 도시재생… 서천 '봄의 마을'

"따뜻함·북적거림 복원하자"… 빈 장터가 문화광장으로

봄의 마을은 광장의 바닥과 건물 외벽에 동일한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해 개방감과 일체감을 극대화했다.

종합문화센터 1층 내부

청소년문화센터 1층 내부

종합문화센터(왼쪽)와 여성문화센터(오른쪽)에 창을 충분히 배치해 실내에 채광이 풍부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사진제공=비드종합건축사사무소

서천군은 노후한 시장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빈 자리에 문화복지시설을 지어 원도심 공동화 문제를 해결했다. 서천 옛 시장 전경(왼쪽)과 현재 모습. /사진제공=서천군·비드건축


서천군 중심지였던 시장 자리에 청소년·여성 위한 문화복지센터 조성

다양한 행사·참여 프로그램 운영


바닥서 외벽까지 통일된 공간 설계… 경계도 없애 개방·일체감 극대화

문화·교육의 꿈 심어주는 공간으로 지역 주민들의 만남 명소로 떠올라


최근 기자가 방문한 충남 서천군청 인근의 중심 상업지역. 1~3층짜리 낡은 저층 상가건물이 주를 이루는 이곳 한가운데 매우 도시적인 모습의 광장과 건물 다섯 개 동이 들어서 있다. 회색빛의 콘크리트와 반짝이는 넓은 창이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는 건물들은 주변 성냥갑 모양의 상가점포와 대조적으로 이질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 기묘한 공간의 이름은 '봄의 마을'. 지난 2004년 서천 중앙시장 이전 후 4년가량 방치된 땅에 서천군청과 지역 주민이 광장·문화센터 등을 새롭게 조성하며 붙인 이름이다. '텅 빈 거리에서 겨우 내내 어깨를 움츠렸던 이들이 따뜻함과 북적거림을 찾기 위해 오고 싶은 곳'이라는 뜻으로 여성과 아동·청소년을 위한 복지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지역 사정을 감안해 만든 곳이다.

시장에서 경계를 없앤 광장으로

'봄의 마을'은 오랜 세월 서천군의 중심을 지키고 있던 시장 자리에 조성됐다. 서천군 내 어디에서 출발하든 가장 접근이 쉬운 곳이다. "시내에서 만나자"는 약속의 말은 "봄말(봄의 마을)에서 만나자"는 말로 바뀌었을 정도라고 지역 주민들은 설명한다.

봄의 마을 광장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첫인상은 '개방'이었다. 5개의 건물이 광장을 감싸고 있는 구조인데 사방이 막힘 없이 트여 있고 출입을 제한하는 문이나 야트막한 경계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축구장 절반 크기(3,604㎡)의 대지에 콘크리트 건물이 다섯 동이나 들어서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답답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어르신들이 남쪽에서든 북쪽에서든 자유로이 출입하고 있었다.

또 다른 특징은 광장 바닥에 사용한 노출 콘크리트가 건물에도 그대로 적용돼 있었다는 것. 같은 재질을 사용한 덕분에 광장과 건물의 일체감이 돋보였고 광장 본래 크기보다 더 넓어 보이는 효과를 줬다.

봄의 마을 공동설계자인 윤희진 경기대 교수는 "'도시의 방'이라는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 바닥에서부터 벽까지 통일된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했다"며 "침수 등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 광장의 바닥과 건물 1층 입구의 높이를 같게 함으로써 소통의 경계를 없애는 데도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봄의 마을'이 바꾼 마을 공동체

경계를 없앤 '봄의 마을'은 건축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도심 공동화 문제를 해결한 '도시재생'의 시도라는 것이 그것이다.

우선 광장 안쪽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면 봄의 마을 핵심시설인 4층 규모의 여성문화센터·청소년문화센터·종합문화센터와 2층 규모의 일자리종합센터·임대상가가 자리 잡고 있다. 문화센터의 경우 대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당연해 보이는 시설. 하지만 서천군에서 문화복지시설을 시내 중심에 세우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실험이었다. 농·어업이 경제활동의 주를 이루며 지역 성장 동력이 부족했던 만큼 산업화를 위한 시설이 우선이라는 의견도 많았기 때문.

하지만 당시 '봄의 마을'에 찬성했던 공무원들과 지역 주민들은 도시발전이 반드시 산업화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오히려 문화·교육의 중심지를 만드는 것이 서천군만의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천군청의 한 관계자는 "봄의 마을 조성 당시 광장으로 두지 말고 대형 상업시설을 지어 분양하거나 주차장으로 활용해 수익성을 높이자는 의견들도 있었지만 반대했다"면서 "빈 공간에 주민들과 문화·예술이 채워지면서 돈으로 셀 수 없는 무형의 가치가 창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실제로 현재 이곳에는 깨알장터, 청소년 도전 골든벨, 자원봉사대축제 등 소규모 행사에서부터 서천복지박람회·문화의 달 행사 등 대규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일종의 문화 복지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서천의 명소가 된 것이다.

서천군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서천군 지명 탄생 6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는 서천군민(5만 7,000여명)의 절반이 넘는 3만5,000여명이 몰려 축제를 즐겼다. 봄의 마을이 완공된 2012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광장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한 인원이 8만여명에 달할 정도다.

문화·교육 도시 꿈꾸는 서천

'봄의 마을'은 마을 공동체뿐 아니라 지역사회도 변화시키고 있다. 문화와 교육의 꿈을 심어주는 공간으로 커 나가고 있어서다. 여성문화센터에는 농사일, 집안일, 자녀 뒷바라지 등으로 마음껏 배우지 못하고 놀아보지 못한 여성들이 서예, 요가, 다이어트 댄스, 바이올린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청소년문화센터의 옥상 일부는 댄스 연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 통로와 교실 벽조차 아이들의 도화지로 활용되고 있을 정도다.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그려 넣고 미래의 꿈을 적은 카드를 붙여놓은 모습이 정겨웠다.

청소년문화센터의 한 관계자는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고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그들이 모여서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며 "평일이면 140여명, 주말에는 200여명가량의 학생들이 방문해 놀이를 통해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찾은 당일에도 종합문화센터의 1층 로비는 지역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나 다름없었다. 2층 높이까지 이어진 계단식 마룻바닥에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고 별도로 마련된 테이블에 앉은 연인은 책을 읽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에게 '봄의 마을'은 건축 이상의 의미다.

건물 기능·공간 놓고 수많은 대화·양보… 8년여만에 원도심의 공동화 문제 해결



■ '봄의 마을' 완공되기까지

'봄의 마을'이 완공되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서천에서 가장 번화하고 땅값 역시 가장 비싼 곳에 광장과 문화복지시설을 짓는다는 소식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서천군은 중앙시장을 다른 곳으로 이전시켰다. 시설이 노후화하면서 슬럼화까지 우려되자 도시정비 차원의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을 이전한 뒤 4년가량 방치되면서 원도심 공동화 문제가 발생했다. 빈 공터에 채워넣을 마땅한 콘텐츠를 찾지 못한 탓이다.

이에 대응해 서천군은 '문화·복지 콤플렉스' 안을 발표했고 상권 회복이 절실했던 상인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던 중 변화의 동력이 마련됐다. 서천군의 계획이 2006년 문화관광부의 '농어촌생활공간 문화적 개선사업' 공모에 선정되며 계획비를 지원 받게 된 것. 이에 고무된 서천군은 주민들과의 대화에 나섰다.

당시 사업에 참여했던 서천군청의 한 관계자는 "문화복지시설이 생소했던 주민들에게 필요성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면서도 "끊임없는 대화의 노력으로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추진협의회를 구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겨우 추진협의회가 운영됐지만 이번에는 토지 보상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옛 시장 부지 일부와 개발 지역에 포함되는 인근 토지에 대한 보상 과정에서 갈등이 생겼던 것. 우여곡절 끝에 봄의 마을은 옛 시장이 폐쇄된 후 8년여 만에 탄생할 수 있었다.

봄의 마을 공동 설계자였던 윤희진 경기대 교수는 "후배 건축사들이 건축의 결과물뿐만 아니라 건축의 과정에도 주목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한다. 봄의 마을이 세워지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토론하며 양보해나가는 과정에서 건축물의 기능과 공간에 대한 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는 "봄의 마을이라는 건축물은 주민에게 필요한 공공시설을 짓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등의 교훈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며 "건축 과정의 교훈을 다른 건축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의 도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봄의 마을'은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신희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