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포퓰리즘이 국가흥망 가른다] <7> 영국 - 무너진 '요람에서 무덤까지'신화

거품 낀 복지에 나라살림 거덜… 30년 넘게 '영국病' 수술중<br>웨스트민스터홀 결혼식장 임대 왕실예산 삭감 등 고육책 불구<br>만성적 재정난 해결 기미 없어 증세·긴축에 국민 고통만 가중


영국 런던 시내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맞은편에 정부의 재정긴축과 증세에 항의하는 대자보와 텐트들이 늘어서 있다. 영국 정부는 공무원 5만명 감축과 아동수당 지급중지 등 재정긴축을 통해 오는 2015년까지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1.6%까지 끌어내린다는 방침을 세웠다. /런던=서정명기자

#1. 지난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지하철로 1시간 거리인 리크먼스워스(Rickmansworth) 지역. 시(市)에서 운영하는 공공도서관 이용시간이 크게 바뀌었다는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도서관 문을 아예 닫아버리고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도 이전에는 오전9시~오후7시였지만 지금은 오후2~7시로 크게 줄었다. 이 동네에 사는 톰 시몬스(27)씨는 "중앙정부에서 내려오는 예산이 삭감되면서 2년 전부터 도서관 직원들이 대거 정리되고 있다. 우리 동네뿐 아니라 영국 전역에서 도서관을 포함해 공공건물은 대부분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한 상태"라며 "정부가 재정건전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대학 논문을 쓰고 있는 시몬스씨는 아침에는 카페에서 작업하다가 도서관 문을 열면 자리를 옮긴다고 말했다. #2. 10일 템스 강변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탄성을 자아낸다. 시티투어 관광 가이드인 피터씨는 "하원이 국회의사당의 웨스트민스터 홀을 결혼식 등 대규모 행사를 열 수 있는 공간으로 임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웅장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점점 초라해지는 것 같아 슬프다"며 한숨을 지었다. 영국 의회는 연간 손실액이 570만파운드에 달하는 운영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이를 민간에 전면 개방, 적자폭을 줄이려는 고육책까지 짜내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며 '원조 복지국가'로 자부했던 영국이 30년 넘게 '영국병(病) 수술'을 받고 있다. 해양국가로 2차 세계대전의 피해가 작았던 영국은 유럽 경쟁국가들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1950~1960년대에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모든 국민들에게 동일한 복지를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제도'의 기틀이 마련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특히 1997년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정권이 들어선 이후 13년 동안 복지혜택은 더욱 늘어났다. 60세 이상 노인은 재산규모에 관계없이 누구나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연간 250파운드의 난방보조금을 받았다. 노령연금은 물론 의료보험ㆍ산재보험ㆍ실업보험ㆍ아동수당 등으로 복지 항목과 수혜 대상이 확대됐다. 전국민 무상의료 제공은 대표적인 사례다. 또 신생아에게는 소액 채권이 제공됐고 저소득 가정 학생들은 교육보조금 혜택을 받았다. 1997년 노동당 집권시 저소득가정 아동에 대한 복지예산은 36억파운드였지만 지금은 240억파운드로 불어났다. 런던 시내 하이드 공원 옆의 랭카스터호텔에서 일하는 나닌씨는 "정부가 베푸는 과잉복지에 우리는 도취해 있었다.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만 같았다"며 "영국경제가 둔화되면서 우리는 복지에 거품이 잔뜩 끼여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영국의 복지 분야 정부 지출은 보건 1,100억파운드, 교육 830억파운드, 사회보장 2,180억파운드 등 총 4,110억파운드에 달한다. 영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적자와 정부 부채에 신음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10년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는 유럽연합(EU) 가이드라인인 3%와 회원국 평균인 7.5%를 크게 웃도는 10.4%에 달했다. 증가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차입을 늘리다 보니 정부 부채는 2008년 GDP 대비 52%에서 2010년에는 80%까지 껑충 뛰었다. 영국은 1979년 집권한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행정부가 사회보장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정책으로 돌아선 후 30년 넘게 과잉 포퓰리즘으로 표현되는 '영국병'을 수술하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수술시간이 길어지면서 국민들의 고통과 아픔도 가중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오는 2015년까지 계획된 긴축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신용등급을 강등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영국 정부가 2015년까지 재정적자 비율을 3% 미만으로 줄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영국은 '재정긴축'과 '증세'로 영국병을 치유하고 있다. 2013년부터 120만가구에 대해 아동수당 지급을 중단하고 앞으로 5년간 육아수당은 동결하기로 했다. 2020년까지 남녀 퇴직연령은 65세에서 66세로 상향 조정되고 연간 2만1,000파운드 이상의 급여를 받는 공무원은 임금이 2년 동안 동결된다. 예산삭감도 뒤따른다. 교육예산은 5%까지 차등 삭감되고 국방예산도 380억파운드에서 350억파운드로 깎인다. 버킹엄 궁전으로 대변되는 왕실 예산도 1,800만파운드에서 800만파운드로 줄어든다. 허리띠 졸라매기에 왕실도 동참해야 한다는 민심이 반영된 결과다. 반면 국민들의 세금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부가가치세는 17.5%에서 20.0%로 올려 연간 120억파운드의 세수를 추가로 거둬들인다. 옥스퍼드 거리에서 펍을 운영하는 아디티야씨는 "나는 현 집권당인 보수당이 싫다"면서 "경제도 좋지 않은데 세금만 잔뜩 올리다 보니 장사를 해도 이윤이 남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해냈다. 또 영국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은행 부실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판단 아래 금융개혁에도 손을 대고 있다. 금융회사 부채를 기준으로 매년 은행세를 매겨 연간 12억~20억파운드를 마련하기로 했으며 현행 18%인 자본소득세도 최대 50%까지 차별적으로 인상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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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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