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한국경제 발목잡는 중견그룹 위기


 연말을 맞아 쏟아지고 있는 정부와 연구기관들의 내년 경제전망은 대체로 내년 한국 경제가 급속한 회복세는 아니더라도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데 모아 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만 하더라도 한국의 내년 성장률은 3.7%로 올해 전망치 2.8%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최근 10년 동안 한국의 성장률이 세계평균보다 높았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내년에는 그렇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낸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과는 별개로, 경제주체들의 피부에 와닿는 내년 경제는 그리 밝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살아나지 않는 내수, 양질의 일자리 부족 등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만성질환은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 심상찮게 이어지고 있는 중견 그룹들의 추락은 오히려 내년이 위기의 한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미 동양·STX·LIG 등이 쓰러졌고 자금난에 봉착한 몇몇 그룹들은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에 몸부림치고 있다. 만약 이 가운데 일부라도 더 나가떨어진다면 금융시장과 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뉴욕에서 미국 국세청(IRS) 직원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국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그는 미국지사나 현지법인을 통해 불투명한 자금 거래를 하는 한국 기업들이 여전히 상상외로 많다고 전했다. 어떤 기업들이냐고 묻자 그는 기업명은 밝힐 수 없지만 알 만한 기업들, 특히 재계 서열에 들어가는 그룹들이 상당수라고 대답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한국기업회계가 국제 수준에 맞게 투명해졌고 기업 오너들의 인식도 변했는데 설마 그렇게 하겠느냐는 반론을 펴자 그는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며 "한국 중견 그룹 오너들의 인식이 너무 안일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리고 이러한 불투명한 거래는 IRS에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조사할 수 있다고까지 덧붙였다.

관련기사



 잇따른 중견 그룹들의 위기를 보면서 그의 말이 새삼스레 사실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동양그룹 등은 자신들의 회사가 최악의 상황을 향해 치닫고 있음에도 무더기로 기업어음(CP)을 발행해 투자자들까지 수렁으로 빠뜨렸다. 또 이 그룹의 오너 일가는 올들어 지난 9월까지 40억원이 넘는 거금을 급여로 받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오너 일가의 무능력과 도덕적 일탈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지난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또 한 명의 동양증권 직원은 "회장님, 고객들에게 이럴 수 없어요. 고객님들에게 전부 상환해주세요" 라고 유서에 썼다고 한다. 어떤 속사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너 일가의 잘못된 행위가 기업의 직원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기업 역시 다른 생명체처럼 탄생하고 성장하며 그리고 언젠가는 사멸하기 마련이다. 또 그 주기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국내 1,0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27.2년(대한상의 조사)에 불과하다. 외국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2010년 미국의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인 액센추어는 S&P500 지수 편입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90년 50년이었던 것이 2010년 15년으로, 오는 2020년엔 10년까지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지금처럼 산업의 변화가 빠른 시대에 한 발만 삐끗하면 곧바로 기업 위기로 연결된다. 기업의 생과 사에서 한순간에 결정될 수도 있는 시기일수록 기업 오너와 경영진의 판단은 결정적이다. 더불어 그들의 결정이 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 때문이라도 고도의 능력과 함께 일반인들보다 훨씬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경제 연구기관들이 내놓는 내년 전망처럼 한국 경제가 저성장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도약하려면 민간 부문 특히,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규제 철폐, 자본조달 여건 개선 등을 통해 기업이 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라면 능동적인 시장 대응, 적극적인 투자,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한편,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업경영을 책임지는 오너 일가와 경영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