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국가시스템 개조하자] 8부. 선진화된 사회체계 구축 <1> 합리적 갑을관계 만들어라

문제 터졌다하면 甲탓… 여론몰이가 공정경쟁 망친다<br>상대 따라 갑을관계 달라 일방적 규정은 무리<br>갑에게 페널티 주는 방식 기업성장 해칠 우려<br>질서 바로잡되 과잉입법 따른 부작용 막아야

남양유업대리점피해자협의회가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대책마련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경제DB


"가맹 본사의 경영을 침해하는 무리한 요구가 크게 늘었습니다. 점주들이 본사가 결정권한을 갖는 메뉴나 가격ㆍ홍보 마케팅 등 지원업무까지 이래라저래라 요구해 골치가 아플 정도예요."

한 국내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 사장의 읍소는 최근 갑을관계 이슈가 시장에서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갑은 절대 강자, 을은 절대 약자'라는 통념에 가까운 인식 속에 사회 전 분야에서 갑을관계의 퇴행적인 모습을 혁파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작 이런 흐름을 등에 업고 시장의 근본질서를 흐리는 을의 행태도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남양유업 사태에서 보듯 아직 갑을관계의 완전한 청산은 이뤄지지 못했고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갑을관계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나 왜곡된 사회 시스템을 바로잡는 작업이 포퓰리즘적 흐름과 여론몰이식 쏠림 현상으로 진행되면서 진정한 의미의 갑을관계 청산이 아니라 또 다른 측면에서 비틀어진 사회 현상이 생기고 있다고 시장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상헌 서경대 프랜차이즈학과 교수는 "최근 갑을관계를 모든 문제의 뿌리인 양 여기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오히려 갑이 을에 휘둘리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갑을관계의 질서를 잡는 노력을 기울이되 정상적이고 보다 체계화한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계약, 공정경쟁을 오히려 비웃는 풍조까지=갑을은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바뀐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대기업인 프랜차이즈 본사에 대해서는 을이지만 다른 구멍가게 자영업자보다는 갑이다. 프랜차이즈 본사도 백화점에는 을이다. 기업 노조는 사측에는 을인 반면 노조도 없는 비정규직에게는 갑이다. 이 때문에 갑을관계를 일방적으로 규정해서는 탈이 나기 쉽다. 더구나 정치권에서 인기경쟁에 가까울 만큼 갑을관계법을 쏟아내면서 기존 역학에도 틈이 생기는 실정이다.

한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 사장은 "얼마 전 한 가맹점주가 '대형마트에 파는 치킨보다 가격을 낮춰달라, 내가 영업하는 지역과 상권에 맞는 메뉴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해 말문이 막혔다"며 "출고가격에는 제품 개발비, 본사 마진 등이 다 들어가는데 그런 요구까지 들어줄 수 있는 본사가 어디 있느냐"고 토로했다. 그는 "뉴스에서 온통 갑을관계를 집중 보도해서인지 이런 요구가 너무 늘어 골치가 아플 정도"라고 전했다.


무조건 을을 지지하는 분위기 속에 영업이 안 되면 갑의 탓부터 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이는 창업 의지를 꺾고 기업 성장을 저해하는 독소가 될 수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온통 갑을관계 논의가 갑에게 페널티를 주는 방향으로 모아지면서 자칫 기업가의 열정만 꺾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동반성장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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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을질서 만들기가 건실한 중기까지 더 어렵게=갑의 여건이 어려울수록 이른바 '갑질'은 더 심하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지난해 부당한 단가인하를 경험한 적이 있는지를 설문조사했더니 1차 협력업체의 경우 33.1%, 2차는 37.2%, 3차는 55.3%에 달했다. 내려갈수록 피해가 더 큰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갑을관계는 따지고 보면 모두가 공범"이라며 "자신이 을이라고 강변하지만 자신에 비해 을인 사람의 차별에 대해서는 눈감는 게 비일비재하다"고 꼬집었다. 갑을관계 해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이는 달리 말하면 정부가 관련 규제를 적용할 때도 규제대상 등을 살펴 보다 세심하게 집행해야 함을 의미한다. 가령 중소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창업시장에 정책자금이 쏠리게 되면 함량 미달의 브랜드가 살아남게 된다. 결국 이런 프랜차이즈 본사는 경영여건이 어려워져 결국 을에 대해 몹쓸 짓을 하게 된다. 강병오 중앙대 겸임교수는 "국내 창업시장에서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3,500개로 일본의 2,000여개에 비해 너무 많다. 창업시장에 브랜드가 난립되다 보니 갑을관계 문제가 더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큰 문제는 갑을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엉뚱하게 건실한 중소기업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제도개선하되 과잉입법 막아야=기업은 물론 정부ㆍ정치권도 갑을관계 개선을 위해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갑을관계 문제를 의식개혁으로 해결하기에는 폐해의 깊이와 폭이 한가하지 않다는 점에서 반길 만하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5월 전국편의점 가맹점 300곳을 대상으로 가맹본부와 가맹점 간 불공정거래행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맹점의 52.5%가 필요 이상의 상품구매 또는 판매목표 강제를, 39.3%가 불공정거래행위를 경험했다.

다만 대책이 의욕만 앞설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세심하게 따져봐야 한다. 최근 청와대와 공정위 등도 기업 제재를 강화하는 입법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피력했다. 논란 사안마다 특별법 등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지도 의문이고 제도의 미비를 따지기 전에 법 집행 의지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나치게 갑을관계의 범위를 확대해서 문제 삼는 것도 안 된다"며 "관행으로 계속돼온 계약서를 뛰어넘는 인권침해는 손봐야 하지만 갑을관계를 규정하는 법을 지나치게 확장할 경우 규율의 실효성에 문제가 생기고 경제회복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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