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현대, SPC로 동부식 구조조정하라

정부 "알짜 계열사 패키지 매각 필요" 압박<br>내년 주채무계열 확정전 확실한 자구책 발표해야<br>당국 "정부지원으로 상선 살리려면 핵심 계열사 조기매각 필요"



정부가 현대그룹에 두산과 동부그룹과 같이 매각 대상 회사를 패키지로 묶어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파는 고강도의 선제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알짜 계열사를 파는 강도 높은 내용이면서 실제로 팔 의지를 증명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4일 “현대그룹이 당장 부도날 만큼의 위기가 없다고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룹차원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동양처럼 매각 작업을 질질 끌어서 안되며, 동부와 두산그룹처럼 오너의 입김이 닿지 않도록 매각자산을 따로 떼어내어 파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그룹은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이 3분기 실적결과 적자로 전환하는 등 수년째 해운업 불황에 따른 여파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는 그룹 차원의 자구방안을 마련중이며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현대측에 시장이 믿을만한 구조조정 방안을 가져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동부와 두산그룹의 구조조정 방식은 그룹이 직접 자산을 팔지 않고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파는 것이다. SPC는 자산을 인수한 대금을 우선 지급하므로 기업 입장에서는 당장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주력 계열사를 파는 과정에서 오너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워 가격협상이 쉬워진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오너가 직접 나서면 기업이 마지막 위기까지 몰려야 팔게 되는데 이 경우 매수자는 어차피 회생 못할 기업이라고 인식해 가격을 더 후려치고 결국 오너는 팔아도 남는 돈이 없다고 판단해 법정관리를 신청한다”면서“두산처럼 SPC방식으로 팔면 재무적 투자자(FI)가 들어오기 때문에 오너가 가격을 더 받기 위해 협상을 파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두산 그룹이 2009년 처음 사용해 단기간에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효과를 봤고, 동부그룹도 같은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 시장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두산 그룹은 2009년 밥캣 인수로 자금난을 겪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두산DST△ SRS코리아△ 삼화왕관△ KAI보유지분을 매각하기로 했다. 두산은 자산을 직접 매각하지 않고 미래에셋PE·IMMPE 와 함께 2개의 SPC를 설립해 4개 자산을 통째로 인수했다. 두산과 미래에셋 등 FI는 51대 49로 두 SPC의 지분을 나눠 가졌다. 두산은 경영권을 확보하고 재무적 투자자는 이사회에 참여하는 조건이다.

두산과 FI들은 각각 2,800억원·2,700억원을 조달하고 은행에서 2,300억원을 은행에서 차입해 총 7,800억원의 자산 인수대금을 마련했다. 이 돈은 곧바로 두산인프라코어로 유입돼 재무구조 개선 자금으로 사용됐다.


동부그룹 역시 두산 모델을 따라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동부그룹은 지난달 17일 김준기 회장이 직접 나서 주요 계열사인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 동부제철 인천공장, 동부발전당진 지분 등의 매각, 김 회장의 사재 출연 등 3조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발표했다. 동부그룹은 이를 통해 2015년까지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졸업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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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그룹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지난 2일부터 동부그룹의 매각 자산에 대한 실사를 거쳐 SPC를 설립해 자산을 매각하기로 했다. 동부와 산은측은 신속한 매각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고 채권은행으로서 동부그룹 재무구조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만큼 실사 이후 절차는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SPC가 동부그룹 자산을 인수한 다음 실제 매수자에 팔때 가격 차이를 정산하게 된다. 동부로서는 매각 전에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SPC는 산업은행프라이빗에쿼티(PE)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며 스틱인베스트먼트·H&Q·스카이레이크 등 사모펀드업체들이 참여를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동부가 SPC방식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시장에서 신인도가 올라갔다”면서 “시장은 동부그룹이 실제로 팔 의지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당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당장 부도날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현대그룹이 동양그룹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앞서 구조조정에 실패한 동양그룹은 장기간 자산을 매각하려 했지만 오너 일가 내부의 엇갈린 주장으로 매각이 여러번 무산됐다. 경영권을 지키려는 욕심과 핵심 계열사라는 이유로 오너 일가가 협상을 번번이 무산시킨 것이다.

현대그룹도 현재 오너가 순환출자를 통해 지분을 갖고 있지만 그 숫자는 안정적이지 않다. 이 때문에 현재 오너는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계열사간 지원을 하고 있다. 동부식의 구조조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6,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갖고 있다. 내년에 현대상선의 회사채 만기가 2,200억원이고 현대로지스틱스와 현대엘리베이터의 회사채 만기를 합치면 4200억원 정도다. 그 밖에 기업어음 규모가 많은 현대상선은 내년에 4,000억원이 만기로 돌아온다. 현대상선은 지난 10월 회사채 신속인수를 신청했으며 내년 1월께 산은과 신용보증기금 채권은행 등은 특별약정이행여부를 점검한다.

현대그룹은 그룹차원의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 중이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내년 이후에는 해운업황이 나아진다고 하니 현대 상선도 영향을 받지 않겠냐”면서도 “현대상선을 살리려면 다른 계열사 중에 알짜를 내놓아야 정부도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국은 현대증권의 지분매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현대측은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대그룹은 강화된 주채무계열 기준에 따라 내년 4월 주채무계열에 들어오게 될 것”이라면서 “현대측도 이 점을 감안해 주채무계열 확정 전에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해야 시장에서 진정성을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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