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일본 '시즈오카'

설경에 시린 눈… 녹차향에 간지러운 코 끝<br>니혼다이라 日 관광 100선중 1위… 에도 막부 전성기 문화 한 눈에

녹차밭 뒤로 보이는 후지산의 위용 사진=시즈오카현 제공

추억의 증기기관차

구노산도쇼쿠 신전

일본 중북 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시즈오카(靜岡) 현은 일본 제일의 명산인 후지산과 온천, 전국 생산량의 45%를 차지하는 녹차로 유명하다. 또 혼다의 창업지이면서 도요타 그룹의 창업자 도요타 사키치(豊田佐吉)의 출생지이기도 해 오토바이ㆍ자동차 공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특히 시즈오카 현의 이즈(伊豆) 반도는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20대 시절 발표한 중편소설 '이즈의 무희'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아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로 세상에 뒤틀려 있는 주인공이 이즈 여행길에서 만난 14살짜리 무희 가오루와 정이 들면서 서서히 성숙해진다는 줄거리다. 소설 속 두 사람은 결국 이별하지만 소녀의 가련한 자태를 선명하게 그려내 청춘의 환희와 비애를 표현한 서정성 짙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해 6월부터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시즈오카 공항에 하루 한 차례씩 운항하면서 접근성이 높아져 시즈오카의 매력을 느끼기 수월해졌다. ◇일본인의 영원한 동경, 후지산 야마나시현 남동부와 시즈오카현 경계에 있는 후지산은 해발 3,776m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맑은 날 도쿄에서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데 현무암으로 이뤄진 원추형의 이 산은 일본의 얼굴과도 같은 존재다. 일본 사람들은 후지산을 두고 '오르는 산'이 아닌 '바라보는 산'이라고 말한다. 멀리서 바라봐야 매력을 더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드넓은 녹차밭 너머로 만년설을 머리에 인 채 우뚝 선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후지산에 사람이 모여드는 시기는 산행길이 열리는 7~8월이다. 등산로는 요시다구치, 스바시리구치, 고텐바구치, 후지노미야구치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가장 대표적인 코스는 요시다구치 등산로다. 가와구치 호수에서 유료 자동차 도로인 스바루 라인을 이용해 40분 정도 달리면 5부 능선에 도착한다. 후지산의 본격적인 산행은 5부 능선인 해발 2,305m에서 시작된다. 해발 2,700m부터는 나무와 풀을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풍경이 이어지기 때문에 등산 재미만 기대하고 간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후지산은 등산 재미만을 위해 오르는 산이 아니다. 일생에 꼭 한 번은 올라야 하는 동경의 대상이자 마음의 고향인 곳이다. 여느 산과 비교할 수 없는 웅장함과 아름다운 산세는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그림과 소설 등 다양한 문학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연중 상당 기간은 후지산 등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후지산을 조망할수 있는 곳이 관광 명소로 각광받는다. 시즈오카 현 시미즈시에 있는 해발 308m의 구릉지 니혼다이라(日本平)는 1년 365일 맑은 날이면 후지산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일출이나 일몰 때 니혼다이라 정상에서 바라보는 후지산은 웅장함과 아름다움으로 관광객들을 압도한다. 이런 이유로 니혼다이라는 일본 관광지 100선 중 당당히 1위에 뽑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자취를 찾아서 시즈오카 곳곳에서는 일본의 근대를 연 영웅으로 칭송받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 에도 막부 시대의 초대 장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그의 지지 세력을 제거하고 일본 전역의 실권을 장악해 대망의 천하통일을 이룬 인물이다. 대표적인 관광지는 도쿠가와의 무덤이 안치된 구노산도쇼쿠(久能山東照宮)이다. 니혼다이라 정상에서 케이블 카를 타고 닿을 수 있는 이 곳은 원래 구노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였다. 1568년 이 곳을 지배했던 다케다 신겐이 산성(山城)을 지었고 이후 도쿠가와 연합군이 다케다 군을 공격, 승리하면서 구노산은 도쿠가와 장군이 소유하게 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죽기 전 자신의 유골을 이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면서부터 일본인에게 신성한 영웅의 정신이 깃든 곳으로 추앙받게 됐다. 신전(곤겐즈쿠리: 일본의 전통 건축양식)과 호쿠라(봉납품을 넣는 창고), 가구라덴(무악을 하는 무대), 고루(시각을 알리는 북을 달고 있는 다락집) 등 15채의 건축물은 에도 시대 초기 건축 양식을 유감 없이 보여주는 중요문화재다. 본전 정면 맨 윗쪽에 새겨진 '가메와리노즈'라는 조각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명 존중 사상을 나타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 설화에서 유래한 이 조각은 중국 어느 마을에서 아이들이 놀다가 한 아이가 귀한 항아리에 빠졌는데 아이를 구하기 위해 항아리를 깨고 생명을 구했다는 일화를 담고 있다. ◇녹차도 마시고 증기 기관차도 타고 일본 녹차 생산의 45%를 차지하는 시즈오카는 구릉성 산지를 그대로 살려 차밭으로 개간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시즈오카 어느 곳에서든 계단식 녹차밭이 펼쳐진 광경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이 곳을 방문했던 허영만 화백은 "마치 초록색 김밥이 끝없이 펼쳐진 것 같다"고 극찬했다. 시즈오카가 차의 고장이 된 것은 130여년 전 메이지 유신으로 직업을 잃은 사무라이들이 고원지대로 몰려들어 차밭을 일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일본차는 볶지 않고 쪄서 만들기 때문에 향은 떨어지지만 담백하고 맛이 깔끔하다. 카나야 지방에 위치한 5,000헥타르(ha) 규모의 그린피아 마키노하라는 일본에서 가장 넓은 차 밭인데 일본차의 8분의 1이 여기서 생산된다.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 찻잎 따기 체험이나 차 제조과정 견학을 할 수 있다. 녹차 관광의 백미는 차 박물관인 오차노사토(お茶の鄕ㆍ차의 고향)에 마련된 고보리엔슈(小堀遠州)의 다실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에 일본 다도를 정립한 센노리큐의 전통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곳으로 센노리큐의 제자 고보리엔슈가 직접 설계한 정원과 다실이 있다. 일본 정통 다실의 입구인 니지리구치는 사무라이가 다실에 들어올 때 사용하는 작은 문이다. 문 밖에 칼을 비롯한 모든 무기와 갑옷을 벗고 무릎을 꿇고 들어오는 것이 법칙이었다고 한다. 이 문은 다도의 세계에서 무사도, 평민도 차등이 있을 수 없다는 숭고한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축 양식으로 해석된다. 오차노사토에서는 1,000엔(입장료 포함)으로 다도 체험을 할 수 있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들이 자이레(가루차가 든 그릇)에서 자샤쿠(찻숟가락)로 가루차를 담아 찻잔에 옮기고 자센(차를 젓는 기구)으로 거품이 나도록 저어 관광객에게 대접한다. 다도를 즐긴 후에는 기모노(여성)와 하카마(남성) 등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기념촬영을 할 수 있다. 속도전에 밀려 대부분의 증기기관차가 고철덩어리로 변해버린 지금 카나야에선 추억의 증기기관차도 만날 수 있다. 증기기관차의 영어 표현(Steam Locomotive)을 따 'SL열차'로 불리는데 카나야역을 출발해 종점인 센즈역까지 40㎞ 구간을 90분 동안 운행한다. '뿌우~뿌우~' 기적 소리를 내며 달리는 증기기관차에서 승무원이 정차역 사이사이에 설명도 해 주고 경우에 따라 노래를 부르거나 하모니카를 연주하기도 한다. 운행 요금은 편도 2,800엔이며 녹차밥에 시즈오카산 식재료로 만든 도시락은 1,000엔에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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