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피지수가 3일 55포인트나 폭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9원 넘게 오르는 등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서울 을지로 2가 외환은행 본점의 딜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김동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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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 여건 좋은 국내 증시에서 우선 차익실현 탓
외국인들의 소나기 투매에 주식시장을 비롯한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이틀동안 코스피지수는 5% 가까이 급락해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대만, 홍콩 등 다른 시장보다 충격이 컸다. 이처럼 국내 증시가 해외 변수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것은 외국인들이 미국 경기침체를 계기로 주식을 팔 수 있는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국내 시장에서 우선적으로 차익실현에 나서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3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55.01포인트(2.59%) 하락한 2,066.26에 장을 마감했다. 전날 2.35% 떨어진 데 이어 이틀 동안만 4.88%나 급락했다. 특히 외국인투자자들은 지난 이틀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주식 1조1,579억원을 내다팔며 주가하락을 주도했다.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이날 하루에만 9.60(0.91%)원이나 오르며 1,060.40원에 장을 마감했다.
최근 증시가 부진을 면치 못하는 것은 미국 부채 한도 상한 협상 타결 소식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빠르게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스피지수의 약세는 다른 주변 아시아 국가들 보다 유독 큰 편이다. 지난 2일부터 이날까지 대만 자취앤지수와 일본 닛케이지수는 각각 2.81%, 3.29% 하락에 그쳤으며, 같은 기간 중국상하이종합지수와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도 이날 오후 3시 기준으로 낙폭이 각각 0.84%, 4.13%로 한국보다는 사정이 나았다.
유독 한국 시장만 충격이 큰 이유는 뭘까. 외국인투자자들이 이번 미국 경기 침체를 계기로 증시여건이 좋은 한국에서 우선적으로 차익실현에 나선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증시는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무기로 다른 나라 보다는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였었다. 금융위기 이후 성장성이 뛰어난 글로벌 기업들에 외국인 자금이 빠르게 몰렸기 때문에 이번 위기로 다른 증시 보다 차익실현 여지가 커진 셈이다. 게다가 최근 급격한 환율상승으로 환차익 매력까지 사라져 외국인의 차익실현 욕구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곽병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그동안 다른 증시 보다 조정을 덜 받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특히 투매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을 외국인에 전면 개방하면서 외국인 주식 보유비중이 급증한 데 비해 이들의 매물을 받아 줄 수 있는 국내 자본의 힘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지난 2일 현재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서 보유하고 있는 주식 시가총액은 383조4,930억원으로 전체 시총의 32.89%에 달한다. 이에 비해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1일 현재 64조1,622억원에 불과하다. 여기에 개인들의 증시 대기자금이라 할 수 있는 투자자예탁금 17조원을 더해도 국내 증시 실탄은 81조원에 불과하다. 외국인들이 대량으로 물량을 쏟아낼 경우 이를 받아 줄 수 있는 자금이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증시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의 대형주 매도로 당분간은 증시가 조정을 받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이번 주말 미국 고용지표 발표와 다음주 수요일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가 변수가 될 순 있다는 설명이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우리나라 증시는 수출주 비중이 높고 내수주 비중이 작아 경기악화 때마다 외국인들의 차익실현 욕구가 더욱 강해진다”며 “당분간 외국인의 대형주 매도로 증시 변동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이며, 미국 고용지표와 FOMC 결과를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현재 더블딥 가능성은 대단히 낮지만 고용지표가 나쁘게 나올 경우 미국 관료들의 움직임이 바빠질 순 있다”며 “미국에서 경기에 대한 대책이 나오기 전까진 외국인 투자심리가 빨리 호전되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