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008년 초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 시절. 금융감독기구 개편 못지 않게 관심을 끌었던 것은 정책금융기관 재편이었다. 기능별로 통합해 정책금융기관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려 했던 만큼 기관별 통합과 기능을 재조정하는 게 불가피했던 상황이었다. 판을 크게 흔들지는 못했지만 당시 인수위는 산업은행에서 정책금융 기능을 떼내 ‘정책금융공사’를 출범시키는 한편 기능이 중첩된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보를 통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4년이 지난 지금 기보와 신보의 통합은 무산됐다. 또 새로 출범한 정책금융공사는 중소ㆍ중견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놓고 기능중복 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2.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로 전이돼 중소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판단한 금융위원회는 지난 11월부터 정책금융기관들의 ‘중소기업 금융’ 관련 역할을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자 해당 기관들은 기능 재조정이나 통폐합 대상이 되지 않으려 경쟁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대통령선거가 예정된 오는 2012년 역시 정책금융기관 기능 재편이나 통합은 주된 관심사안이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당초 출범 때와 달리 기능이 중복돼 있는 정책금융기관들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워낙 반발도 심하고 정치권까지 개입하다 보니 메스를 들이대기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첩첩이 겹치는 정책금융기관의 역할=매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책금융기관들의 기능 중복에 대한 지적은 빠지지 않는 메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양상은 비슷했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정책금융공사와 수출입은행의 중소기업지원제도가 겹쳐 비효율적인 중복지원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정책금융공사가 선정, 지원하는 ‘프론티어 챔프’ 대상 기업 가운데 12개가 수출입은행으로부터도 비슷한 지원을 받아 중복된 지원금만도 1,367억원에 이른다. 신보ㆍ기보와 정책금융공사의 역할 중복 문제는 감사원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감사원은 정책금융공사의 간접대출 대상 업체와 신보ㆍ기보가 지원하는 업체의 중복 여부를 비교한 결과 신보는 66%, 기보는 55% 중복됐다고 지적했다. ◇대선 이후 기능재편ㆍ통폐합 폭풍 불가피=정책금융기관의 기능 재편이나 통폐합은 워낙 민감한 이슈라서 정부 역시 조심스럽다. 현재는 중소기업 금융과 관련된 기능 재편에 무게를 두고 소폭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가진 정도다. 중복기능의 미세조정인 셈이다. 정책금융공사는 산업은행이 가진 시장안정 기능을 이관 받고 기업 구조조정과 녹색산업ㆍ바이오헬스 등 전략적 신성장 사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전담하게 하는 쪽으로 윤곽을 그리는 모양새다. 또 수출입은행은 수출 비중이 작은 국내 기업에 대한 지원 업무를 중소기업 대출에 특화된 기업은행에 넘겨주고 해외 플랜트와 무역금융 등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아울러 신보와 기보의 경우 재무제표 평가 중심의 전통기업 보증업무(신보)와 기술력 평가 중심의 혁신ㆍ벤처기업 보증업무(기보)로 영역을 확실히 구분하면서 기존 중복보증은 점진적인 분할 상환을 유도할 방침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좀 더 큰 변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실물경제 안정을 위한 금융권의 역할 가운데 하나로 산업은행ㆍ수출입은행 등을 통합한 정책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는 통폐합보다 한 단계 낮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책금융기관 간 업무 중복, 시장마찰 등의 문제로 이들이 실물안정 기능을 하는 데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상당 기간 지적됐다”며 “정책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는 등 정책금융기관 간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통폐합 논의 역시 학계나 연구기관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신보ㆍ기보 통합, 산업은행 민영화보다는 여타 자회사를 떼내고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통폐합해 명실상부한 정책금융기관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연구 성과물들이 대선공약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큰 회오리도 몰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체국 금융의 도약도 주목거리=우체국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체국은 이미 예금 및 보험 수신규모가 70조원에 이른다. 9월 말 현재 우체국예금 잔액 규모는 59조2,588억원. 지난해 말 50조3,650억원보다 15%(8조8,900억원)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국내 18개 은행의 평균 수신증가 규모가 3조5,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증가세가 2배 이상이다. 일반 금융기관보다 월등히 많은 금융점포와 자동화기기를 갖고 있어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은 물론 기업들까지 우체국과 제휴할 정도”라며 “예금ㆍ보험시장 등 우체국금융의 약진은 일반 금융기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