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은행 징계의 선후(사설)

은행감독원이 한보철강에 대해 거액의 부실대출을 해준 은행 및 은행임직원들을 무더기 징계했다. 부실대출의 일차책임이 은행에 있으므로 은행업무에 대한 감독책임을 갖는 은행감독원이 특별검사를 실시해 비위사실을 적발해 내는 것은 당연한 절차이다.그러나 징계를 당한 은행은 물론 일반인들조차 은행보다 먼저 특검을 통해 징계받아야 할 곳은 은행감독원이라 생각하고 있다. 민간에 대한 공권력의 행사는 그것이 정당하고 솔선수범적이어야 수긍될 수 있다. 공권력이 자체의 잘못엔 눈을 감으면서 민간의 잘못만을 징계하려 한다면 이는 결코 올바른 공권력행사가 아니다. 이번 은감원의 은행 임직원에 대한 징계가 그 꼴이다. 은행의 부실대출은 지도감독을 소홀히 한 은감원에도 책임이 있다. 자신에게 무한히 관대한 은감원의 특검을 두고 일각에선 특검을 빌미삼아 민간을 무더기로 징계한 뒤 그 자리를 관리들로 메울 것이라는 등 의혹의 시선마저 보이고 있다. 또한 징계를 당할 사람이 징계를 했으므로 징계가 물렁해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모두 그럴법한 얘기들이다. 은감원은 관련 은행들에 대한 정기검사를 통해 한보철강에 대한 여신의 적정성 여부를 검사했으나 이렇다할 문제점을 지적함이 없이 적당히 넘어갔다. 그같은 은감원의 적당주의는 이수휴 은감원장이 한보철강부도후 한 말속에 단적으로 나타나 있다. 『은행들에 대해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 헛되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다』는 실토가 그것이다. 이같은 대출압력성 발언을 무책임하게 해온 은감원의 안이한 대응이 한보의 부실을 키운 것이다. 그러나 은감원에서 그 누구하나 감독소홀의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사람이 없었다. 은감원만 그랬던게 아니다. 한승수 경제부총리는 한보철강부도후 후취담보가 충분한데 왜 부도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한부총리의 입에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다는 「입에 발린」 유감표명이 나오기까지 무려 25일이나 걸렸다. 그때까지 공직자들은 하나같이 「나는 몰라요」를 앵무새처럼 외웠다. 그같은 공직자들의 주문이 효력을 발휘했음인지 검찰도 경제부처 관리들은 터럭하나 건드리지 않고 넘어갔다. 김영삼 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한보사태와 관련한 정책차원의 책임을 묻겠다고 했으므로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이번 기회에 유사사건의 재발방지 차원에서 은감원을 비롯한 재경원, 통산부 등 한보철강에 대한 대출 및 사업인허가 라인에서 부실을 묵인했거나 방조한 공직자들의 책임은 철저히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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