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으면 부동산정책 담당 공무원들도 봄을 즐길 여유가 있을 것 같다. 집값이 뚜렷하게 떨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대로라면 올봄만큼은 3~4개월마다 머리를 쥐어짜며 내놓던 정책도 쉬어가게 됐다.
실제 봄 성수기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아파트값은 5주째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정부가 이른바 버블세븐으로 지목했던 지역은 1억~2억원을 낮춘 급매물도 팔리지 않는다. 거품이 조용히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시장이 잠잠해진 것을 곧 ‘시장이 안정됐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국토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3분의2 이상은 기회가 되면 땅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굳이 설문을 들추지 않더라도 최근 송도 오피스텔 청약 광풍에서 확인했듯 틈새만 보였다 하면 시장의 욕망은 언제든 분출한다.
현재 정부가 연이어 내놓은 대책이 단기적으로 시장에 먹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금을 중과하고 대출을 조이니 매수ㆍ매도자가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수급 불균형은 여전히 시한폭탄 같은 과제로 남는다. 정부가 공공 부문의 공급을 늘리겠다고는 하지만 민간의 공급이 위축된다면 공급 부족에 따른 고통의 시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시장이 안정적으로 보이는 지금이야 말로 장기적인 공급대책에 심혈을 기울일 타이밍이다. 강남 집값을 그나마 안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송파 신도시에 대해 건설교통부와 서울시가 힘겨루기를 벌이는 것은 앞뒤를 못 가리는 처사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건교부는 판교 신도시 공급이 늦어지면서, 서울시는 은평 뉴타운 분양을 연기하면서 값비싼 대가를 치른 경험도 있지 않은가.
정부 규제로 된서리를 맞은 지방 주택시장도 2~3년 후에는 오히려 주택 공급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중견 건설회사인 D사의 회장은 “지방은 이제 물량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할 게 아니라 아예 끊기는 것을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올 하반기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화려한 선거 공약에 부동산정책은 어떤 모습으로 변질될지 알 수 없다. 정부가 봄을 맞아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믿음이 가는 공급대책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